해파리는 군집 생활을 한다 (1) : 설화 


웹진 해파리는 생활권 확장 및 생태계 조성을 위해 외부 필진을 모셔오게 됐습니다. ଳ
설화 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나는, 인어공주 


Mermaid, Русалка, 2007
안나 멜리키얀




아름답게 부유하는 사람들, <나는, 인어공주>(안나 멜리키안, 2007)
설화 _ 이상하고 독특한 영화를 좋아합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차용한 주인공 알리사의 이야기는 정말 환상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마법을 사용하여 자신이 상상한 행복에 마침내 가까워졌을 때, 알리사의 여정은 도시에서 ‘흔한 사건’인 교통사고로 막을 내린다. 알리사가 예상치 못하게 죽은 후에 이어지는 장면은 뭔가 이상하다. 그녀가 목숨을 구한 짝사랑 상대인 샤샤는 다른 여성과 이어지고, 알리사의 가족들은 평범한 일상을 보낼 뿐이고…… 알리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했던 세상은, 그녀가 사라져도 그저 지속된다. 마치 처음부터 그녀가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저마다 알리사의 공백을 대신할 누군가를 찾으면서.

원하던 학교에 입학하고 싶다는 알리사의 소원은 다른 합격생을 죽게 만든다. 죽음으로 만들어진 공석을 차지하게 된 알리사는 “승자는 얻고, 패자는 잃을 뿐”이라는 광고 문구를 마주하고 모스크바 거리를 질주한다. “너의 소망을 두려워하지 마라”, “진보는 너에게 달려있다”, “너의 손에 모든 것이…”, 알리사가 지나치는 수많은 광고판의 문구는 모두 단순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 자동차를 사면, 이 아파트를 사면, 이 상품을 사면 ‘모든 걸 누릴 수 있다.’ 알리사가 어린 시절부터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 광고판은 어느 순간 그녀를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환상의 세계로 깊숙이 진입하도록 한다. 이 환상 속에서 알리사가 이루려는 소원은 누군가의 몫을 빼앗을 뿐이다. 자신의 마법으로 타인을 죽게 한 알리사는 광고판에서 벗어나려는 듯 거리를 내달린다. 그리고 다짐한다. 더는 소원을 빌지 않겠다고.

2000년대 중반 러시아의 중심에 자리 잡은 글래머(гламур) 현상은, 화려하고 환상적인 삶에 대한 욕망에 소비자본주의를 결합하여 매체로 분출한 결과이다. 푸틴의 집권 아래 만들어진 ‘안정된’, ‘살기 좋은’ 러시아는 세계와 자신의 국가가 연결되길 원했고, 이런 흐름에서 상품 소비를 통해 누구나 욕구를 향유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열망이 러시아에 유입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글래머 이미지가 매체를 통해 분출됨과 동시에 재추동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인어공주>는 모두가 원하는 글래머한 삶에 의문을 남긴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는 행복은 정말 우리의 행복이 맞아?

범람하는 글래머 이미지 속에서, 러시아는 소비를 대가로 아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들었다. 발터 벤야민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환상을 집단적 ‘꿈’이라는 비유로 짚어낸다. 그는 『파사젠베르크(Passagen-Werk)』(2002)에서 19세기 파리의 파사주를 통해 자본주의의 환상, 즉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e)’를 읽어내기 위해 꿈과 깨어남을 언급한다. 이는 자본주의가 추동하는 물신숭배를 수면상태 혹은 꿈에 비유하여, 깨어남을 통해 그러한 허상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벤야민의 비유로부터 영화에서 짤막하게 반복되는 알리사의 꿈-세계는 글래머 이미지로 구축된 모스크바 거리와는 차이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 하는 어린 알리사,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버지, 그리고 짝사랑하는 샤샤에 둘러싸인 꿈-세계는 알리사가 깨어나는 순간 사라지는 단편적인 이미지로 제시된다. 알리사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꿈-세계는 현실 속 그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하고 튕겨 나간다. 모두가 꿈에 빠진 현실에서 알리사의 모습은 달의 토지를 판매한다는 샤샤의 사업 광고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모순적으로 알리사의 허무맹랑한 꿈은 현실의 글래머한 이미지가 침범하지 않은, 그녀에게 진실한 현실성을 가져다주는 영역으로 이해된다.

영화의 마지막, 꿈속의 알리사는 후-하고 카메라 너머의 관객을 향해 입바람을 내뱉는다. 마치 영화가 끝난 후 모두들 꿈에서 깨어나라는 듯이. 어머니의 배에서 살아간 물고기는 인간사회에 ‘정상적으로’ 섞여 들기 위해 목소리를 잃는다. 순수한 호의조차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 속, 뭍에 올라온 알리사는 홀로 아름답게 세상을 부유하다가 사라진다. 그런데도 알리사의 신비로운 힘은 그의 꿈-세계에 남아있다. 뒤이어 따라올 물고기 떼와 함께 깨어날 준비를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