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리

Shari, 2020
요시가이 나오
임유빈 

눈은 소리를 흡수하므로, 눈으로 덮인 세상이 고요하다. 바람과 구름이 겹치고, 바다와 땅이 만나며, 겨울에는 70~80%의 바다가 얼음으로 뒤덮인 일본 최북단 샤리의 시레토코에는 겪어본 적 없던 겨울과 ‘붉은 것’이 함께 찾아온다. 여행가이자 사진작가인 이시카와 나오키가 촬영을 맡았으며, 안무가이자 필름 메이커로 단편 작업을 주로 해오던 요시가이 나오의 첫 장편 작품이다.

감독의 목소리와 ‘붉은 것’의 목소리는 구별되지 않는다. 사슴 고기를 먹은 요시가이 나오의 잠들지 못하는 밤, 따뜻해진 날씨로 동면하지 못하는 곰, 잠에 빠지는 순간과도 같은 공존과 공생의 흐릿한 지점에서 총성과 종소리가 울린다. 2만 마리의 사슴과 곰을 비롯해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시레토코 국립공원 근처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의 이야기는 자연의 이자로 살아가는 삶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 삶을 쉽게 정의내리지 못한다. 인간과 짐승의 틈새에서 붉고 두터운 실의 패턴으로 태어난 ‘붉은 것’ 역시 자신의 존재를 쉽게 정의내리지 못한다.

‘붉은 것’은 아이들의 스모 대회를 기습한다. 아이들은 요시가이 나오가 샤리에 도착해서 먹은 시카(사슴), 레몬(레몬), 연어(토바), 코리(얼음)라는 이름으로 네 개의 팀을 결성해 붉은 선 안에서 힘겨루기를 한다. 각 단어의 앞 글자를 따면, 시-레-토-코. ‘붉은 것’ 역시 아이들을 잡아먹겠다고 선언한다. 아이들은 각자의 반응을 보인다. 공포에 질린 동시에 즐거워한다. 공포와 즐거움, 이상기후의 공포는 한밤중 내리는 눈 아래에서 고요하고, 아이들은 천진하다.

잠들지 못하는 동물과 ‘붉은 것’, 그리고 천진한 인간. 바다의 잠열 방출로 인해 유빙은 37년 동안 꾸준히 연쇄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유빙의 감소는 바다의 태양 에너지를 축적하며, 겨울철 결빙을 늦춘다. 차가워진 땅이 지구를 뜨겁게 만든다. 높게 쌓인 눈은 땅을 따뜻하게 보호한다. 하나의 쇼트에 순방향과 역방향으로 흐르는 바람은 물, 구름, 얼음과 같은 자연과 지구의 순환을 설경의 적막감으로 목격하게 하며, 듣고, 만질 수 있도록 한다.

원래라면 눈으로 뒤덮였을 오론코 바위 위로 ‘붉은 것’이 올라간다. 가죽을 벗자, 새하얀 등과 ‘붉은 것’이 공존한다. 반인반수의 존재가 오호츠크를 향해 소리친다. 붉은 털실을 토해낼 것 같은 울부짖음과 외침이 바다에 닿기를 바라며 소리친다. 해빙이 되지 못한 슬러시 같은 바닷물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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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busan.go.kr/moca/exhibition01/1561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