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와 파티를!

해터뷰(3): 영화제의 상괭이



〈해터뷰 (3) : 해파리와 파티를!〉
은 영화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해양 생물을 만나 인터뷰하는 기획이다.
영화제가 새로운 영화사 쓰기와 비평의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이 답을 찾기 위해 영화비평웹진 해파리는 영화제에서 일하고 있는, 상괭이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상괭이: 2017년부터 영화제 자원활동가로 참여했고, 2019년 여름부터는 꾸준히 다른 일을 겸하며 영화제에서 일하고 있는 상괭이다. 





해파리들: 영화제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상괭이: 당시 수업을 들었던 교수님이 작고 아무도 모르는 영화제의 프로그래머였던 것 같다. 그래서 출품된 작품의 리스트를 정리하는 일을 잠깐 아르바이트처럼 하게 됐었다. 출품된 영화 스크리너를 보면서,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그렇게 초청팀 자원활동가로 영화제에 참여하게 됐고, 그곳에서 만났던 분들이 다 좋으신 분들이었다.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을 이야기했을 때, 선생님들이 그걸 영화적으로 많이 풀어주셨다. 어떤 영화를 보면 도움이 될 거라는 말씀도 많이 해주셨고,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그때의 기억이 좋았다. 살아가면서 고민이 있을 때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책이 될 수도, 그림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시기 내게 필요했던 건 영화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일을 계속 해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영화제 업무가 사무실에 앉아서 하는 일도 있지만 영화제 기간에는 뛰어다니고 그런 점이 외향적인 성격과 맞았다.


해파리들:
사회학과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전공을 공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제 일을 하면서 영화 관련 학과의 대학원에 진학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제에 종사하면서 영화를 더욱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상괭이:
영화제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초청팀, 운영팀, 마켓 등에서 일을 했다. 어떠한 계기로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됐었는데, 그때 비로소 프로그래머님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우리 영화제가 이 영화를 왜 틀어야 하고, 이 영화가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그런 걸 아카데믹하다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고 보고 좋은 영화를 틀어야 한다기보다 영화가 가진 개별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회의의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이런 걸 논의하고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았고, 그렇게 대학원에 가게 되었다.


해파리들: 사회학 공부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영화 이론을 공부하는 지금 사회학 공부는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도 궁금하다.


상괭이: 
사회학도 굉장히 범위가 넓다. 그중에서도 관심이 있던 문제는 LGBTQ 또는 인종과 관련된 사회적 소수에 관한 논의였다. 당시에는 운동가가 되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 자체도 책을 그렇게 많이 읽지도 않았고, 활자가 크게 와 닿지 않는 느낌이 있어서,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 말고도 다르게 해소하는 방법이 있을까 고민했다. 그때 캘리포니아에서 최초로 선출된 동성애자 정치가이자 인권 운동가인 하비 밀크가 주인공인 <밀크>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그 영화의 인트로가 기억이 많이 나는데, 뉴욕에서 보험을 파는 세일즈맨이 지하철에서 운명적인 상대방과 만나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그렇게 샌프란시스코에 이사한 뒤 게이 커뮤니티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목소리를 대변하고 공직까지 맡게 되는 그런 이야기이다. 페이퍼를 길게 쓰고 하는 것보다도, 이 영화를 한 번 보여주는 게 나에게는 더 크게 다가왔고, 그 영화를 계기로 영화를 부전공으로 선택하게 됐다.


해파리들:
최근 봤던 영화 중에는 어떤 영화가 좋았나?


상괭이: 작년 상반기에 일을 쉬고 있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못 보고 있던 영화를 많이 봤다. 양영희 감독님의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를 봤는데 그 영화가 너무 좋아서 세 번을 봤고 보면서는 매번 울었다. 그리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본 아녜스 바르다 감독님의 <쿵푸 마스터>(1988)가 기억에 남는다. 나로서는 쉽게 공감할 수 없는 것들을 영화를 통해 공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영화가 깊게 남는 것 같다.


해파리들: 영화를 왜 좋아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상괭이: 지금은 영화제와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여기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영화를 보며 풀고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아저씨들과 꼰대가 되게 많다. 그래서 약간 내가 이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나라는 그럴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나의 어떤 오염된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그때 영화를 보면 정화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해파리들: 이제 영화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영화제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상괭이: 기본적으로 영화는 텔레비전을 통해서도 볼 수 있고, 어디에서나 다 볼 수 있지 않나. 물론 독립영화, 예술영화, 대안영화는 쉽게 볼 수 없지만, 영화는 어디를 딱히 가지 않아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들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들이다. 영화제는 그렇지 않은 작품을 많이 다루면서,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나 낯선 영화의 형식을 가진 영화들을 계속해서 끄집어내고, 계속해서 뭔가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알린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한다.


해파리들: 그렇다면 상괭이에게 이러한 역할을 하는 영화제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상괭이: 영화제에 영화를 보러 오시는 분들이 얼마나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구성에 관심이 있고, 신경 쓰고 오시는지는 잘 모르겠다. 보통 프로그래머님들이 영화제의 프로그래밍을 하는 걸 지켜보면, 모든 것에 이유가 있고, 그런 이유까지를 고려해서 프로그램의 구성을 이룬다. 그래서 이 구성이 완성됐을 때 가장 성취감이 크다. 나도 프로그램의 모든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지만, 그런 의미를 관객분들이 조금이라도 캐치를 해주고, 피드백을 받을 때, 영화와 영화제를 통해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을 알릴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 중요한 것 같다.


해파리들: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들이 일하는 방식이나 영화를 대하는 태도를 가까이에서 보게 되면 경이로울 정도다. 그런데 요즘 가지고 있는 고민이 있다. 상괭이가 말해준 것처럼 영화제에서는 각 영화에 의미를 찾아내고 부여해서 전체 구성을 조직하는 프로그래머의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 프로그래머가 있다면, 실무적인 방향에서 프로그램팀이나 홍보, 운영 등 여러 팀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미술관에서는 기획 전시 또는 비엔날레의 경우 프로그램 디렉터가 있고, 디렉터를 서포트하는 큐레토리얼팀이 있다는 것이었다. 프로그램 디렉터가 전체적인 컨셉과 방향을 정하면, 큐레토리얼팀이 함께 작품을 리서치하고 전체적인 균형을 맞춰 나간다. 물론 미술관의 이러한 방식이 더 좋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영화제의 경우에는 프로그램팀이라고 하더라도 프로그램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고, 프로그래머의 기획을 구체화하는 실무적인 일에만 참여한다. 가벼운 의견을 내는 것조차 프로그래머의 고유한 권한을 침범하는 일이기 때문에 쉽게 상상할 수 없는데, 이렇게 소수의 프로그래머에 의해서 전체 프로그램이 결정되다 보니 관객에게도 프로그램의 가진 의미가 전달되는 데 한계를 갖는 것 같다. 물론 프로그래머의 고유한 영역이라는 것은 동의하는 부분이다. 정말 공부를 많이 하고, 고심하는 사람들이니. 전시나 비엔날레와 다르게 특히 영화제의 경우에는 프로그래밍이나 기획의 의미가 간과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고. 영화제의 프로그램이 영화 관객에게 어떤 효과를 가지는지 그런 고민도 생긴다. 물론 프로그램의 경우에만 그러하고, 프로그래머라고 하더라도 집행위, 이사진이나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 균형을 맞추고 끊임없이 압력을 받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상괭이: 프로그래머의 고유한 권한이라는 말도 동의하지만, 프로그래머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면, 서로에 관한 이해가 생기고, 프로그래머 입장에서도 실무적으로 협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밍에 관한 서포트를 서로에게 줄 수 있는 포텐셜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제는 모든 사람이 한시적으로 일한다는 점이다. 일을 하고, 그만두는 텀이 짧다 보니 사람을 파악하기보다, 일단 영화를 먼저 선정하고 수급하고 그런 결과가 더 중요해진다. 그렇게 과정이 생략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훨씬 더 프로그래머에게 치우치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해파리들:
맞다. 영화제는 모두 한시적으로 일한다. 프로그래머도 그렇고, 팀장급도 그렇다. 영화제의 노동 조건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상괭이는 영화제에서 자원활동가로 시작해 다양한 직무를 경험한 만큼, 영화제의 노동환경에 대해서 말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영화제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영화를 공부했거나, 또는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영화제는 수많은 자원활동가와 단기인력으로 운영되고 있어 노동자 모두가 단기계약직이라는 불안정성을 안고 가야 한다. 2019년 행해진 영화제 특별근로감독에서 이른바 국내 6대 영화제라고 일컬어지는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DMZ다큐멘터리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2018년 한 해 동안 단기계약직을 포함한 541명의 스태프에게 약 5억 9,713만 원의 임금을 체불했고, 연장근로 한도 위반, 근로조건 서면 명시 위반, 성희롱 예방 교육 미실시 등 노동법의 여러 사항 또한 위반했다는 사실도 공표되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영화제에서 꾸준히 일해 온 상괭이는 영화제의 노동자 근로 환경이 구조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는지, 지속가능한 영화제 운영을 위해 노동자의 불안 고용 및 근로 처우 개선, 전문성 개발 등 어떤 점이 개선된다면 좋을지 말해 줄 수 있을까?



상괭이:
내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는 많은 영화제가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했을 시작점이었다. 그래서 사실 노동 환경이 부당하다고는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런데 이것도 영화제마다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전주영화제나 부산영화제는 정해진 근무 시간에서 오버되는 시간을 칼같이 계산해서 급여로 준다든지, 그만큼의 연차나 휴가로 보상을 해준다. 만약 휴가를 소진하지 못했을 시에는 급여로 다시 주기도 한다는 식으로 정리를 하는데 작은 영화제로 가게 되면 그런 기준들이 불명확해지기 때문에 여전히 모호하게 근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영화제에서 상근직은 정말 최소 인원이고, 단기간에 많은 사람을 뽑았다가 확 줄이는 그런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서울시 같은 곳에서는 기금을 받기가 어렵다고 들었다. 기금을 받으려면 상근직과 관련된 것들이 중요하다고 알고 있는데, 그 기준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제를 하다 보면,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나처럼 일반 회사와 영화제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일반 중소기업이나 심지어는 대기업의 경우도 생각보다 노동 환경이 그렇게 체계적이지 않다. 광고 회사에 다니는 지인은 새벽 5시에 퇴근할 때도 있는데, 농담으로 자기 시급이 3,600원이라고 한다. 내가 지금 다니는 일반 회사도 주말 출근에 대한 수당은 있지만, 수당이 시간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영화제뿐만 아니라 일반 회사도 비슷한 것 같아서, 이렇게 중소기업을 다니다가 또 전주영화제나 부산영화제에서 일하면 시급을 칼같이 계산해 주니 어떻게 보면 이게 낫다고 해야 할 지… 혼란스럽다. 그럼에도 고용 불안정은 확실하고.


해파리들: 나도 영화제에서 일하고 있지만, 노동 환경에 대해서 만족하는 편이다. 사기업에서 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임금으로도 아직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고, 2019년 이전에 일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이후 영화제들이 개선하는 데 많이 노력한 것 같다. 특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국내 영화제 중 유일하게 당시 노조를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영화제 근로자 노동 환경에 가장 많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고용 불안이나 전문성 개발같은 측면은 불안하긴 하다. 그렇다면 영화제에서 상근직을 뽑지 않는 혹은 뽑을 수 없는 구조에 대해서도 짚어보면 어떨까.


상괭이: 영화제는 일 년에 한 번 한다. 이게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일 년에 영화제를 한 번만 하는 것은 어떤 시기에 업무가 집약되는 거지 사실 그 이후에는 널널하기 때문에 영화제 입장에서도 상근으로 인력을 운용하는 것은 마이너스가 훨씬 크긴 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획 상영, 강연 프로그램을 하긴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이 돈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 수도 없고. 영화제도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고, 내부적으로도 마이너스만 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평가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상근직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영화제 말고도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는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해파리들: 그래서 다른 나라의 영화제는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하더라. 많이 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해외의 영화제도 마찬가지이긴 한 것 같다. 상괭이가 말한 것처럼 영화제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수익을 창출할 수도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의 관계에서 자율성을 가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대표적으로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세월호 참사에 관한 <다이빙벨> 상영을 부산시가 상영을 취소하라는 압력을 넣으면서 영화계의 보이콧이 시작되기도 했다.
올해 2024년부터는 영화제 지원 사업 예산이 대대적으로 삭감되었다. 육성 지원이 50%가 삭감되었는데, 국내 및 국제 영화제로 구분해서 지원해 주던 예산이 올해 하나로 합쳐져 국내에서는 10개의 영화제만이 지원을 받았고, 그마저도 기존의 예산에서도 상당 부분 삭감되었다. 작은 영화제는 말 그대로 모든 지원이 끊겼다. 물론 국내의 많은 영화제 모두가 얼마만큼의 전문성과 의의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정부의 일방적인 삭감으로 인해서 영화제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괭이는 영화제가 자율성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상괭이: 영화제는 개인적인 이익이나 사익이 아니라 문화의 발전을 위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기 때문에, 문화 산업적인 측면에서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위한 지원 사업을 하고, 복지와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IT의 경우에도 지원 사업이 엄청 많지 않나. 국가에서는 반도체나 IT 같은 주력 산업에는 쿨하게 막대한 돈을 떼어주고, 운영체들이 알아서 운용하게끔 하는데, 영화제는 그렇지 않다.
또한, 영화제는 정권에 따라 많이 좌지우지되는 것도 사실이다. 서울에 있는 영화제의 경우에는 시장이 누구냐에 따라서 예산이나 전체적인 프로그램도 많이 영향을 받게 된다. 또 영화제가 어떤 성격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특히 여성영화제 같은 경우는 정권이 지지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알고 있다. 예산 삭감 관련해서는 현재 국가나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제를 하루아침에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영화제를 한다고 했을 때 당연히 돈을 주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지원금과 보조금을 받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이 촘촘하고 꼼꼼하게 평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파리들: 동의한다. 영화제 예산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분배된다. 그리고 이 심사를 하는 사람들은 영화인들이다. 그래서 영화제와 정부, 영화진흥위원회와 그리고 이 심사를 하는 영화인들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다른 분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생각하게 됐는데, 영화제 예산이 삭감됐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영화제 전반에 관해서 논의해야 할 차례라는 생각을 한다. 망설이는 부분은 이러한 논의가 영화제를 ‘혈세낭비'라고 말하는 관료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화제는 정치인들이 되게 욕심을 내는 장소인 것 같기도 하다.


상괭이: 맞다. 그런데 그들은 영화에 관심이 없다.


해파리들: 그런데 프로그램에도 개입하고 싶어 하고, 참 이상하다. 나는 영화 포스트 프로덕션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영화 산업 아래에 있기 때문에 정부가 바뀌면 산업 자체가 굉장히 크게 영향받는다는 것을 일하면서 체감한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영화 산업 자체가 국가의 전체적인 자본을 창출하는 역할은 아니다 보니 쉽게 도외시되고, 한편으로는 나라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산업이다 보니 더 좌지우지하려는 것 같다. 그런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다른 해외는 잘 모르지만, 프랑스나 영국의 경우에는 예술인 조항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가 바뀌더라도 산업이 지속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 오고 있는데, 그런 게 우리에게도 생기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정부가 바뀌더라도 보다 장기적으로 보호해 줄 수 있는 조항이 조금 더 생기면 안전하게 발전적인 방향으로 지속되지 않을까.
이어서 질문을 해보면, 영화제는 다양한 영화를 소개함으로써 1세계 중심의 영화산업 시스템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스템을 조성하고, 지역의 소규모 영화제는 수도권에 집중되는 문화 향유권을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필름 마켓과 영화 교육, 아카이빙 등의 영화 상영 외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익성을 담보하게 되는데 최근 영화제가 너무 많아지고 세분화되면서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좋으면서도 오히려 영화제를 폐쇄적인 문화로 만들어 가는 경향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어떻게 생각하나?


상괭이: 영화제가 더 세분화되고 마이너틱해지더라도 그러한 영화제들이 생기는 것을 지지한다. 이유 중 하나는 영화제를 다니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부산영화제는 영화도 많고, 티켓팅도 하기 힘들지 않나. 그런데 막상 부산영화제에서 화제작이 극장에서 개봉한다고 해도, 사실 10만 이렇게 되기가 힘들다. 하물며 부산에서 그렇게 화제작이었던 작품도 그 정도의 주목밖에 받지 못했는데, 그런 영화 말고도 우리가 작다고 표현하기도 애매한 더 알려지지 않고 새로운 감독, 새로운 접근을 하는 작품을 그런 세분화된 영화제들이 영화를 다양하게 비출 수 있다면 나는 재미있을 것 같다. 큰 영화제에서 틀었으니 우리도 튼다 이런 것이 아니라 영화제만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정말 이런 영화도 있나 싶을 정도의 영화를 단 5편에서 10편이라도 틀어줄 수 있는 영화제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잘 모르겠지만, 영화제를 가는 소수가 정해져 있다는 말을 누군가와 했던 적이 있다. 부산의 경우도 유명한 배우가 와서, 사실 그 배우 때문에 영화제를 가는 거지, 영화를 보기 위해 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잘 모르겠다.


해파리들: 그럼 상괭이는 앞으로 한국에서 열리는/열리게 될 영화제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 지금까지의 상황을 톺아볼 때 어떤 지점을 구조적으로 보완하고 보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상괭이: 일단 노동하는 분들의 안정성이 확보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뾰족한 수는 알지 못하고 방안을 낼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안정권이 우선인 것 같다.


해파리들: 앞서 영화제의 안정성이나 고용, 노동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포스트 프로덕션 산업에 종사하는) 나는 포괄임금제라고 해서 임금 자체에 야근 수당을 포함해서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받는 수당을 초과해서 야근하더라도 추가 수당을 요구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종사하는 산업은 노조가 없다. 노동자가 자살해도 노조가 생기거나 뭐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거기에서 일을 하는 이유는 어쨌든 경력을 쌓을 수 있고, 경력을 바탕으로 더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다른 회사에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버티는 건데, 영화제처럼 단기로 인력을 활용하는 곳에서는 고용 안정성 보장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근로의 측면에서 영화제 노동자는 영화 산업의 종사자라고 볼 수 있지만 법에서는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영화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영화제 스태프가 영화법상 ‘영화근로자’라면, 영화법이 정하는 스태프 보호조항 - 영화법 제4조의2 내지 3조의8 - 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데, 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경력도 쌓기 어렵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상괭이: 사실 영화제에서 일하다 보면, 생각보다도 이 사람이 왜 여기에서 이거 하고 있지 하는 분들이 되게 많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을 초반에 만나게 되면 항상 빨리 도망가라고, 다른 안정적인 업무를 찾으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영화제가 한 번 하고 좋아하게 되면 끊어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걸 가지고 딱히 크게 뭘 할수가 없고,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도 어떻게 보면 지금 그런 상황이다. 영화제 말고는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영화제에서 계속 일을 하기에는 불안하다는 게 와닿는다. 처음에는 단기로 일하고, 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적이 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영화제가 그런 곳이 되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다.


해파리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영화제 스태프가 실제로 영화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니 흥미로웠다. 영화제에서 경력을 쌓는다는 것에 대해 말하다 보니, 많은 사람이 영화제에서 일한다고 하면 그래서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한다. 사실 그런 야심은 없고. 영화제 자체의 많은 프로세스가 생략되고, 안정적이지 않고, 전문적이지 않다는 오해가 총체적으로 쌓이다 보니, “그래서 프로그래머 될 거야?”라는 질문으로 수렴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영화제도 프로그래밍 팀이나 이런 것들이 좀 구체화된다면 최근 부산영화제 인사 관련 사태나 개인이나 집단으로 대표되지 않고 프로그램 자체로 영화제를 예술과 산업 모두에서 지속할 수 있는 방향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괭이: 맞다. 업계에 있는 분들도 영화제를 했다고 하면 우리는 나름대로 전문화되고 특성화된 사람들인데도 아르바이트를 길게 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지만 뭐가 문제일까? 우리가 너무 폐쇄적으로 일했던 걸까?


해파리들: 초반에 영화제를 떠나는 분들은 영화제에서 일을 한다고 하지만, 하는 일은 영화와 관련된 일이 전혀 아니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영화제 프로그램이나 구성에 대한 이해가 내외부적으로도 아직은 없는 것 같고, 프로그램이 얼마나 전문적으로 짜이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는 것 같다. 물론 다른 영화제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가까이에서 본 프로그래머들은 그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화적 현상 또는 문제의식이 있고, 그걸 집성화시키기 위해 정말 노력하더라. 물론 아닌 분도 있겠지. 그런데 그런 프로그램보다도 사실 베니스나 칸 영화제 같은 국제영화제의 화제작을 가지고 와서 튼다고 했을 때, 관객들은 영화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생기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유망한 영화제에서 좋은 영화를 트는 건 사실이지만 수입이나 수출의 형태로 영화제가 프로그래밍되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럼, 최근 영화제 말고 관심 있는 영화제 이슈가 있는지 궁금하다.


상괭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의 ‘스크린 쿼터 축소 반대운동’에 관심이 간다. 국산 영화의 의무 상영에 관련된 운동이었는데, 최근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가 궁금하다. <범죄도시 4>(2024)도 관객 수 때문에 100명 이상의 기업 단체 관람을 받고 있다는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코로나로 개봉이 밀렸던 작품도 이제 순차적으로 개봉한다고 하고. 한국영화 점유율이라고 해야 하는지, 개인적으로 극장의 편성표도 항상 의아하다. 이렇게 한 작품에 시간표를 몰아줄 거면, 아트영화나 독립영화를 조금 더 틀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다.


해파리들: 오. 스크린 쿼터 이야기를 해주니까, 단순하기는 하지만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도 멀티플렉스에서 의무 상영이 있다면 다양성 측면에서 또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독립영화나 예술영화가 무엇인지 제대로 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국내에는 기업 중심의 멀티플렉스가 가장 흔하니까, 현실적으로 그런 극장에서 다양한 영화를 튼다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또 흥미로운 건 독립영화전용관은 어떻게 되는가의 문제일 것 같다. 독립영화상전용관도 지원금을 받는 만큼, 멀티플렉스에서 독립영화관객마저도 가져 가면 문제가 생길까? 그리고 멀티플렉스에서는 의무 조항으로 영화를 상영한다면 돈이 되지 않는 영화를 트는 것 자체가 기업 논리에 맞지 않으니 어렵고. 복잡한 것 같다. 이게 관객 수나 좌석 점유율과 같은 숫자로만 많은 것들이 판단되니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매니저로 근무했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본사에서 관 별로 편성표를 짜서 내려준다. 본사에서 관 마다의 영화 점유율을 분석해서 시간표를 작성해서 내려주는데, 영화 시간표를 짜는 직원은 대기업 종사자라는 생각을 갖고 일하기 때문에 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은 없다. 그러니까 영화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들이 입사를 해서 정말 숫자만 보고 내려주기 때문에 독립영화나 아트영화를 상영할 수 없다. 독립영화는 가끔 틀지만, 이런 작품은 사람이 아무도 안 오는 시간대를 정해서 튼다. 일정 기준을 채워야 하고, 기준은 있다. 점유율이 나오지 않으니까 영화를 프라임 시간대가 아닌 시간대에 넣고, 그러다 보니 점유율이 또 떨어지고,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다. 또 이런 기업들이 영화관뿐만 아니라 배급사를 갖고 있으니, 자기들이 배급하는 영화를 더 틀게 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배급, 제작, 상영의 연결이 이러한 영화 상영의 문제를 계속 일으키는 게 아닌가 한다.


상괭이: 영화에 전문성이 있는 사람과 영화를 상업적으로 바라보는 사람 사이에서의 어떤 간극 때문에 발생하는 일인 것 같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영화를 좋아하고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바라보는 입장은 상업적인 논리와 맞아떨어지지 않지 않나. 문제는 이걸 해소하고 설득하기까지의 절차나 체계도 없는 것이다 보니 더욱 모호하고 마이너해지고, 그 와중에 산업은 더욱 상업적으로 되는 건가 싶다.


해파리들: 영화를 산업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 역시 영화에 대해서는 전문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영화 제작이나 프로듀싱, 그리고 영화 매체학, 영화 이론 모든 게 사실 전부 다른 건데 국내에서는 이 모든 걸 단순하게 ‘영화’ 하나로 퉁친다는 것 아닐까. 학제적으로 영화를 접근하지 않는 국내의 태도 또한 원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한다.


상괭이: 맞다. 커머셜과 아카데믹한 시선이 다르고 그 간극이 지금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해파리들: 앞으로 영화제에서 일하고 싶은 분들이나 혹은 영화제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말이 있는가.


상괭이: 경험에 비춰 봤을 때 나는 사실 큰 생각 없이 영화제 일을 했다. 그런데 영화제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어떻게 보면 직장이기도 하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고용 불안정도 단기간에 해결될 것 같지 않고, 일 년에 딱 한 번 영화제를 준비하는 일은 연간 스케줄을 봤을 때 영화제 기간 외 부분들은 상당히 루즈할 수도 있다. 무언가를 더 창출해 내고 싶고 지속적으로 연간 플래닝을 하고 싶다면, 영화제는 일 년에 한 번이면 충분하다 이런 것들이 있어서, 영화제를 한다는 것은 당연히 지지하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했을 때에도 그런 것들이 괜찮다면 영화제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죠.


해파리들: 고맙다. 미래 상괭이의 모습을 우리와 공유해 줄 수 있을까.


상괭이: 지금은 실무단에서 하는 일이 좋다. 배급사와 연락을 하고, 감독님, 상영본, 자료를 챙기고, 이 정도의 업무가 나한테는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영화제에서는 일을 더욱 지속하지는 못할 것 같다. 정리를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고,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성격이 맞는 다른 곳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 헤매고 있는 상태이다.


해파리들: 마지막 질문이다. 본인에게 영화란?


상괭이: 아직 영화를 잘 모르고 배워야 할 게 많다. 발언했다가 나중에 다시 그 영화를 보면 내가 왜 그때 그런 생각 없는 말을 했지, 그런 기억이 많아서 영화에 대해서 말은 하고 싶지만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내가 그때 얼마나 닫힌 사고를 했었는지, 삐딱하게 봤었는지, 또는 아무 생각 없이 봤구나, 이런 반성을 하게 만든다. 인터뷰도 아무 말 대잔치가 될 것 같아서 많이 망설였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사실 되게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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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와 파티를!〉에서는 세 번째 해터뷰의 주인공으로 영화제에서 일하고 있는 상괭이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제 예산 삭감, 노동 환경, 프로그래밍에 관한 논의뿐만 아니라 영화제에서 일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들어보고자 했다. 앞으로도 해파리는 다양한 곳에 분포하고 있는 다양한 해양생물들을 만나 그들의 서식지를 조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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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O B E C O N T I N U E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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