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박선, 『카메라 소메티카』 - 안정윤
2023년 2월에 출간된 『카메라 소메티카 : 포스트-시네마 시대의 회화와 영화』(박선 지음)는 회화 세계(유명한 회화작품, 미술가, 미술관, 미술관의 관객 등)를 참조한 영화 일곱 편을 분석하면서 우리 시대에 영화와 관객이 어떤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진단하고 있습니다.
아래 안정윤 편집장님의 서평을 공유합니다.
안정윤 (영화 잡지 『프리즘오브』 편집장)
『카메라 소메티카』는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저자는 회화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일곱 편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한다. 서론에서 언급하고 있듯, 『카메라 소메티카』의 각 장은 기존에 발표된 학술 논문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영화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으며, 다양한 이론을 끌어와 작품을 분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면을 예시로 들어 그 분석을 뒷받침하기 때문에, 전문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까지도 <풍차와 십자가>, <셜리에 관한 모든 것>, <잊혀진 꿈의 동굴>, <유메지>, <뮤지엄 아워스>, <프랑코포니아>와 <내셔널 갤러리> 등에 대한 정보를 어렵지 않게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회화를 포함한 개별 예술 작품들의 의미는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것들은 감상자에 따라 다르게 독해될 수 있으며, 때로는 작가의 의도와 무관한 방향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회화를 기반 삼아 제작되는 영화는 정지된 작품에 운동성과 서사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임무를 지닌다. 이러한 행위는 원작품의 의미를 고정해버리는 안타까운 시도가 될 수도 있는 반면, 독해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키는 창의적인 시도가 될 수도 있다. 또한 흥미롭게도, 그렇게 완성된 영화 역시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궁극적으로 『카메라 소메티카』의 저자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영화’라는 개념은 과연 무엇이었으며,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하게 될 것인가? 저자는 회화와 감상자의 관계에서 그 단초를 찾아 나간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영화와 여성에 대한 성찰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과거 영화 이론은 여성 인물이 남성중심적이며 관음적인 시선하에 놓이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항상 예외는 존재한다. 저자는 그러한 예외성에 주목한다. 2장(회화의 “푼크툼”)에서 저자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의 한 장면이 관음증적 시선을 자극하는 듯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시에 주인공 셜리가 남성적 시선에 수동적으로 부응하기만 하는 인물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셜리는 사색적 태도를 유지하며 강한 자의식을 가진 여성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원작 회화 <뉴욕의 거처>와 달리 <셜리에 관한 모든 것> 속 여성은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며, 남성은 소품과 같은 위치에 놓인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4장(경계에 선 예술가의 영화적 초상) 역시 마찬가지다.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유메지>는 실존 인물인 다케히사 유메지를 모델로 한 ‘화가 영화’다. <유메지> 이전에도 화가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는 많았으나, 주로 백인 남성 예술가 중심이었다는 한계를 지닌다. <유메지>는 그러한 관습을 전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다. 본문에서는 “유메지식 미인화”라는 것이 언급된다. 다케히사 유메지는 가부장적 남성이 되기를 거부했으며, 스스로를 1920년대에 새롭게 출현한 남성상과 동일시한 인물이다. 그가 그린 미인도 역시 정적이며 수동적인, 전통적 여성상이 아니라 능동적인 ‘인간 여성’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영화 <유메지>를 독해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배경지식이 된다.
끝으로 저자는 분석의 대상이 된 영화에 대한 추가 정보와 함께, DVD, 블루레이, 스트리밍 서비스 등 해당 작품을 공식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경로 또한 소개하고 있다. 일곱 편의 영화를 먼저 감상한 후 『카메라 소메티카』를 소화한다면, 독자의 영화적 체험 확장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