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이도훈, 『이방인들의 영화』 - 박동수


2023년 3월에 출간된  『이방인들의 영화: 한국 독립영화가 세상과 마주하는 방식』(이도훈 지음)은 우리가 오랜 시간 기다려온 한국 독립영화 연구서입니다.

이 책은 한국 독립영화가 사회적 현실과 마주하는 방식, 영화라는 매체와 마주하는 방식, 그리고 미지의 관객과 마주하는 방식을 탐구합니다.

아래 박동수 영화평론가님의 서평을 공유합니다.



이름 없는 영화들의 장소
 
박동수 (영화평론가)

‘한국영화의 위기’라는 말이 다시금 대두되고 있다. 한국영화의 흥행 실패, OTT 서비스의 부상, 극장 티켓값에 관한 논쟁이 터져 나온다.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 속에서 ‘한국영화’로 호명되는 것에서조차 실패하는 영화들이 있다.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하거나 유명인의 언급이 없다면, 이 영화들은 관객과 평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기조차 쉽지 않다. 오랜 시간 독립영화를 연구해온 이도훈 영화평론가의 단행본 『이방인들의 영화』는 그러한 영화들을 다룬다. 책의 서문은 ‘독립영화’가 처한 상황을 진단한다. “독립영화 ‘작품’에 대한 관심에 비해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적은 것이 현실”(21p)이라는 저자의 진단은, OTT 서비스의 추천 알고리즘, 기자와 평론가의 연말 리스트, 평점 사이트의 별점 등으로는 대다수의 관객 앞에 도달하지 못하는 영화들의 과거-현재-미래에 관한 정확한 서술이다.

『이방인들의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 에세이영화 등의 논픽션 영화만을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저자가 ‘이방인들의 영화’라 명명하는 영화들이, 극장 개봉, 대중적 저널리즘의 관심, 영화상 수상 등 다양한 경로로 이름을 획득한 극영화보다는 그러한 기회 바깥에 놓인 논픽션 영화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에서 중점적으로 분석하는 작품 중 극장에서 정식으로 개봉되거나 OTT 등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영화는 극히 드물다. 이는 한국에서 생산되는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에세이영화, 단편영화 등이 극장과 OTT라는 유통망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음을 시사한다. 역으로, 대부분의 관객은 그러한 영화들에 접근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저자는 ‘이방인들의 영화’에 접근하기 위해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에 다가선다. 흔히 한국 독립영화의 시발점을 <상계동 올림픽>(1988)으로 대표되는 액티비즘 다큐멘터리에 두고 있지만, 책의 1장은 그 시작을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사이 전개된 소형영화 운동에서 찾는다. 유현목이 주축이 되었던 시네포엠, 하길종의 영상시대, 미술과 영화의 경계에 놓여 있던 제4집단, 대안적 영화를 고민하던 영상연구회, 이익태가 주축이 된 필름70 등의 단체는 16mm 필름으로 실험영화를 제작했었다. 저자는 다큐멘터리와 아방가르드 영화 사이에 놓인 이들의 활동을, 정확히 말하자면 ‘충무로’로 대표되던 주류 영화계에 속하지 않는 영화들을 한국 독립영화의 기원으로 삼고자 한다. 물론 『이방인들의 영화』는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를 기록하고 통시적인 서술을 하고자 하는 책은 아니다. 다만 책의 1장에서 이익태의 <아침과 저녁사이>(1970), 김홍준과 황주호의 <서울 7000>(1976) 얄라셩의 <국풍>(1981) 등의 ‘도시교향곡’ 작품들이 한국 독립영화의 출발점에 있다는 서술은, 그동안 초기 독립영화에 관한 연구 대부분이 보여준 “사회변혁으로서의 영화운동으로 한정한다는 한계”(32p)를 벗겨내고 확장된 논의를 가능케 한다.

다시 말해, 『이방인들의 영화』는 ‘액티비즘 다큐멘터리’로 규정되어 온 한국 독립영화의 정체성, 특히 논픽션 영화들에 관한 논의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려는 시도다. 무엇보다 논의의 출발점을 ‘도시교향곡’ 영화들로 삼은 것은 책에서 다루는 영화들이 보여주는 장소-이미지들이 추상적인 의미에서 장소성이나 지역성, 역사성을 보여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상계동 올림픽>과 <두 개의 문>(2012)를 중심으로 독립영화와 젠트리피케이션의 관계를 논의한 2장, 영화의 사진적 지표성이 갖는 역량을 몇몇 다큐멘터리 영화의 역사 서술 방식과 함께 논의한 3장, ‘액티비즘’에 내포된 현장성이 전유되고 새로이 창출되는 상황을 다룬 4장, 임철민 감독의 작업을 중심으로 포스트 시네마라는 담론 속에서 영화의 장소를 새로이 고민해본 6장 등, 『이방인들의 영화』는 ‘이방인들의 영화’가 다루고 놓이는 구체적인 장소를 탐사한다.

부록으로 수록된 「사유하는 영화, 에세이영화」는 한국 독립영화에 국한된 논의는 아니다. 다만 이 글에서의 논의는 『이방인들의 영화』의 전체를 포괄하며 책에서 다뤄진 ‘이방인들의 영화’가 수행하는 사유를 설명한다. 어쩌면 책에서 논의되는 영화 모두를 포괄할 수도 있는 에세이영화라는 용어는 <붕괴>(2014)의 불안에 대한 성찰에도, 한없이 지루한 <도돌이 언덕의 난기류>(2017)의 실존적 고민에도,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2020)의 역사에 관한 우회적 사유에도 해당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경화된 영화적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횡단하면서 두 세계를 비판적으로 분열시키는 영화적 실천”(359p)을 보여주는 영화들의 사유를 성실하고 면밀하게 탐구한 결과물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이 다루는 영화들이 독립영화 전체의 모습을 그리지는 못한다. 독립영화라는 이름은 <파수꾼>(2010)과 <똥파리>(2008)를, <워낭소리>(2008)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3)를, <벌새>(2018)와 <메기>(2018) 같은 영화를 가리키기도 한다. 한 가지 모습으로 규정되진 못하지만, 독립영화라는 이름은 분명 특정한 영화들을 가리키고 지칭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저자의 작업은 그것을 벗어나 보자는 제안이다. “OO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반복되는 논의를 뛰어넘어, 한국 독립영화가 지닌 익숙한 상을 벗어난다. 『이방인들의 영화』라는 제목도, 극영화를 배제한 과감한 선택도, 이를 위한 시도와 같다.

‘한국영화의 위기’라는 말에도 꿋꿋이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있다. 이름 없는 영화는 그렇게 성실하고 적극적인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멀티플렉스가 아닌 작은 독립영화관에서, 영화제 상영작 리스트의 잘 보이지 않는 한 귀퉁이에서, 알고리즘이 보여주지 않는 OTT 플랫폼의 깊은 곳에서, 이 영화들은 기다리고 있다. 『이방인들의 영화』가 떠올리는 독자는 성실한 관객이자 한국영화의 위기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는 이방인이다. “우리가 아직 이름을 알지 못하는 영화는 이방인과 같다. 이 관계를 뒤집어보면, 우리 또한 그런 영화에게는 이방인과 같다.”(7p) 저자가 자신과 영화의 관계를 고백하듯 적은 이 문장은, 자신 또한 이방인으로서 ‘이방인들의 영화’가 보여준 치열한 사유에 동참하겠다는 다짐처럼 다가온다. 『이방인들의 영화』는 그러한 영화와 함께할 또 다른 이방인에게 손을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