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비평가들:
아무나 할 수 있는 이야기비평가가 되기 위한 자격은 무엇인가? 비평가로 인정받는 데 공인된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어떤 경로를 밟고 이름을 알려야 하는 건 맞는 것 같다. 영화비평으로 등단하고, 자기 글을 블로그나 개인 소셜 미디어 같은 사적인 매체가 아닌 영화 잡지 같은 공적인 매체에 싣고, GV를 하고, 팟캐스트도 나가다 보면 어느새 '비평가' 또는 '평론가'라는 말이 붙어도 어색하지 않다. 이런 활동이 만들어주는 것은 비평가라는 '자격'이라기보다는 지위, 즉 그를 비평가로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인정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행위들을 하나도 하지 않고 영화에 관해 많이 생각하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부를 수 있을까? 그들의 말은 비평가의 것과 나란히 놓일 자격이 있을까? 비평가가 되기 위한 경로를 밟지는 않았지만, 영화와 영화비평을 자기 관심사로 두며 꾸준히 접하고, 가끔 글 같은 것을 생산하는 사람을 비평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모든 관객은 말할 수 있다. 영화에 대해서, 극장에 대해서, 영화제에 대해서, 감독과 배우에 대해서, 비평에 대해서. 여기 인디스페이스 비평가지원사업을 통해 만난 네 명의 비평가/연구자가 있다. 우리는 그저 우연히 말할 기회를 얻은 '어느 관객'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관객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한다. “무명의 비평가들”이라는 기획은 여기서 출발한다. 이름 없는 발화자로서 가질 수 있는 자유로움을 도구 삼아, “아무나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보려 한다. 총 9편의 영화를 상영하고 대담을 나누는 이 기획전을 통해 지금의 독립영화사, 영화 커뮤니티, 여성감독, 독립영화의 소재와 재현의 문제 등을 살펴본다. 무명의 비평가는 말 그대로 이름이 없거나 이름을 알 수 없다. 즉 그들을 규정할 수도 없고, 정의내릴 수도 없다. 독립영화가 그러하듯, 독립영화의 관객이 그러하듯. 무명의 말과 글은 그 무게가 다소 가벼울지언정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독립영화 담론들과 진득하게 공명한다.
네 명의 기획자가 모여서 나눈 영화에 관한 말들, 그리고 앞으로 나눌 말들이 들을 만하다면 그것은 영화를 각자의 방식으로 접근한 이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 그 자체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이들의 말은 영화라는 제도에 상대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 그리고 이보다는 조금 먼 사람들로서 당신과 동시대에 존재하며 이 시대가 제공하는 환경에서 영화를 접한다는 면에서 모두에게 있는 일반성을 조금씩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들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혹은 그래서 이들의 말이 들을 만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하고 싶었던 말, 또는 당신이 동의할 수 없기에 당신의 생각을 촉발할 말이 여기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자리가 또 다른 '아무나'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우리는 우리가 준비한 이야기를 가져갈 테니,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야기를 가져와 주었으면 한다. 그렇게 이야기들이 겹쳐지고 쌓여갈 때에야, 우리는 독립영화와 관객을 제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 대담은 2023년 11월 23일 진행되었다.
주관: 인디스페이스
기획: 김명우, 박동수, 배새롬, 임유빈, 인디스페이스
기획: 김명우, 박동수, 배새롬, 임유빈, 인디스페이스
시작: 만남, 비평과 연구, 영화의 관계
임유빈: 모두 반갑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한마디씩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임유빈입니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영상이론을 공부했고, 미술관이나 영화제에서 일하거나 종종 영화에 관한 글을 쓰고 상영회를 기획합니다.
박동수: 안녕하세요. 저는 박동수라고 합니다. 2021년도 독립영화비평상에 당선된 후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고, 독립 영화 잡지에 글을 쓰거나 영화제와 기획전에 참여하거나 공동체 상영을 기획하고 영화 팟캐스트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배새롬: 저는 배새롬입니다. 별다른 활동은 하지 않고, 영화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명우: 저는 김명우입니다. 80년대 한국 영화운동에 대한 논의로 석사 논문을 썼으며, 현재 영화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임유빈: 저희는 '인디스페이스 영화비평가 지원 사업'으로 모이게 됐습니다. 영화를 비평하는 젊은 세대의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상영이나 독립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취지로 인디스페이스 측에서 저희를 만나게 해주셨는데요. 각자 어떻게 인디스페이스 비평가 지원 사업을 알게 됐고, 지원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명우: 일단 저는 영화비평가 지원 사업을 올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영화운동이나 80년대 독립영화의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었지만, 사실 현재의 독립 영화를 많이 봤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서, 독립 영화를 많이 접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배새롬: 전 트위터를 보고 지원하게 됐고, 구체적인 기대나 예상은 없이 그냥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박동수: 저도 소셜미디어에서 올라온 공지를 보고 참여하게 됐습니다. 저도 마침 활동을 시작하고 있을 때라 참여 요건이 됐어요. 어차피 인디스페이스는 자주 가던 곳이기도 했고, 가능한 많이 개봉작을 보려는 마음도 있어서 지원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많이 가려고 했지만 그렇게 많이는 못가고 있습니다.
임유빈: 저도 우연히 접하게 됐습니다. 마침 독립영화 상영회를 주기적으로 기획하던 시기여서 독립영화전용관인 인디스페이스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독립영화에 대해 더 자주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또한 영화 쪽은 비평과 관련된 지원 사업이 거의 전무한 상황인데, 인디스페이스에서 관련 사업을 거의 처음 시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떤 내용일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원 사업에 신청했을 때, 각자가 하고 있는 작업이 비평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사업에 지원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배새롬: 저는 연구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연구랑 비평을 많이 분리하곤 하지만, 항상 연구가 넓은 의미의 비평에 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영화를 볼 때도, 비평하는 눈으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하고 있는 작업을 비평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기대하는 비평이 아니니까요.
김명우: 저도 새롬 님처럼 영화사 연구를 한다고 생각을 하고, 그런 유의 글을 써왔던 게 더 많은데요. 사실 비평이라고 하는 것이 영화를 분석하면서 그간 우리가 포착하지 못했던 것들을 주목하거나 고정된 관념들을 깨뜨린다거나 하는 식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비평의 역할을 본다면 영화사 연구도, 물론 상당 부분 비평과는 다른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자료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주목하지 못했던 부분을 포착하여 새로운 논의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비평의 연장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임유빈: 저는 연구와 비평이 엄밀한 의미로 다른 영역에 있다고 전제하면서, 두 영역을 오가며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학문으로 연구하고자 할 때와 비평적으로 접근하고자 할 때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다르기도 한 것 같고요. 동수 님은 등단을 하셔서 이제 비평가로 활동하고 계시지만, 사실 동수 님을 제외하고는 저희 중에 공식적으로 등단한 비평가는 아무도 없네요. 그러한 의미에서 저도 가끔 영화에 관한 글을 쓰긴 하지만 스스로나 바깥에서 비평이라고 호명된 적은 없기에 직업으로서의 비평가라고 불리기에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이 지원 사업을 통해 처음 그렇게 불리는 것이 생소하기도 했고요.
박동수: 저 말고 다른 세 분은 대학원이나 이런 곳에서 연구 활동이라는 걸 먼저 시작하셨고, 저는 블로그 리뷰로 시작해서 활동하게 된 사람이에요. 사실 저도 비평이 뭔지 혹은 제가 하고 있는 게 비평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확신은 없지만, 이제 한편으로는 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사람들이 블로그나 왓챠에 남긴 단평 같은 것들이 비평이 아닐 이유도 없지 않을까하고 생각을 하는 편이고, 그런 의미에서 저희 모두가 하는 작업이 어쨌든 비평적인 무언가를 수행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비평과 연구를 분리하려는 경향에 관해서, 사실 그렇게 칼같이 나눠지는 부분은 없다고 생각도 듭니다. 올해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비평과 연구의 다른 점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면접 질문을 받았어요. 그때 마구잡이로 던졌던 답변이, 비평은 좀 더 직관에 의존한다면, 연구는 조금 더 자료에 의존한다는 적당한 대답만 했었습니다. 사실 그 정도의 차이인 것 같아요. 그리고 오늘 대담을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자료를 쭉 읽으면서 느낀 것은 결국 양자를 오가면서 활동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유빈: 새롬 님이 말씀해 주신 '사람들이 기대하는 비평'이라는 것, 그런 이상적인 비평에 대해 다들 자격이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평을 하고 있음에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비평 활동에 대해 주저하는 부분이 생긴다고도 생각하게 됩니다. 비평을 하는 사람들도 사실상 스스로 비평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데 주저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비평이란 그럼 무엇일까요?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기대하는 비평, 그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평은 축소되고 있는 것일까요?
김명우: 일단 제도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등단을 했다 하지 않았다의 어떤 기준이 있는 것 같고, 거기에 부합되는 글의 형식이나 기준에서 비평이다 혹은 나는 비평가다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비평의 기준이 아닌, 지금 저희가 모여서 말하는 비평은 글쓰기의 형식이나 그런 부분들이 앞에서 말했듯, 사람들이 뭔가 기대하는 비평에서 조금 벗어나는 식의 경향이 있지 않나라고 생각합니다.
배새롬: 제도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읽힐 것을 목표로 하는 잡지나 웹진에 실리냐 아니면 회원을 가려 받는 학술지에 실리느냐와 같이 어디에 실릴 글을 쓰냐에 따라 자기가 쓰는 게 비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연구라고도 생각할 수 있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편의상 나뉘는 이름 같기도 합니다. 문학에서는 그래서 비평을 현장 비평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니까 지금 문학계 현장에서 나오는 것에 대해서 비평을 한다는 겁니다. 연구는 옛날 것도 하지만요. 그런데 영화는 옛날 걸 얘기해도 요즘 지면, 그러니까 좀 더 대중적인 지면에 나오면 비평이라고 부르고, 아니면 연구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박동수: 많이 동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영화 쪽에서도 현장 비평가라는 말을 쓰는 분들도 있지만, 많이 쓰이지는 않고요. 뭔가 문학, 음악, 연극에 비해서 역사가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최근에 비평이라고 불리는 것이 어떤 글로서 작동하기보다는 영상이나 말로 많이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극장이나 영화제에서 마이크로 말하는 비평, 소위 말하는 시네토크 프로그램으로 비평이 많이 넘어가고, 또 사람들이 그걸 받아 적어서 블로그나 커뮤니티에 공유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걸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그것들 전부를 다 비평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그리고 대중적인 비평에 대한 생각은 약간 그런 것이겠죠. 이동진 식의 해설 비평, 혹은 라이너 등의 유튜버가 하는 것들일 텐데, 물론 그것도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임유빈: 저희가 지금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는 사실 비평의 범주가 되게 넓고, 확장적인 의미라는 것인데요. 저는 현장, 그러니까 현업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비평은 이래야 해, 혹은 이건 비평, 또는 저건 비평이 아니라고 말하는 분위기가 계속해서 있어 왔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지면이나 글 쓸 곳이 점차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또한 비평이 무조건 자유로운 형식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공식적으로 등단하기 위해서 제출해야 하는 글의 형식이 비평의 형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좋은 비평인지에 대해서 말하기는 또 어렵지만, 이러한 생각은 어디로부터 온 건가라는 궁금증은 있어요. 모두가 비평은 자유로운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그런 …
김명우: 맞아요. 그런 점에서 사실 이 인디스페이스에서 기획한 사업의 이름이 ‘영화비평가 지원 사업’이라는 것도 흥미로운 것 같기는 해요. 어떻게 보면 딱 정체성이 뚜렷해 보이는 ‘비평가’라는 이름을 내세워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런데 막상 모인 사람들은 비평가라고만 또 정의내릴 수 없는 사람들이 모였으니까요.
임유빈: 그리고 증빙해야 하잖아요. 자신의 작업을 증빙해야 하는데, 아마 논문을 내셨거나, 저는 웹진에 올렸던 짧은 글이 위주였고요. 비평 활동에 대한 증빙을 다양한 형태로 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 여럿을 모아서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아요.
박동수: 사실 비평가를 육성한다고 하는 게 지금까지 없었잖아요. 몇몇 곳에서 비평가 공모전을 진행하는 게 전부였고요. 소위 등단 제도 속에서도 등단 이후에 딱히 일거리를 주는 곳도 지면을 확보하고 있는 몇몇 잡지 밖에 없었고, 지금은 거의 『씨네21』 밖에 안 남았죠. 인디스페이스에서 이런 사업을 해준다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비평가가 직업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어떤 집합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 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가요. 인디스페이스에서 올린 내용을 보면 비평 매체에서 활동하는 편집자, 기자, 평론가 모두 포함이 된다고 쓰여있어서 그렇게 넓혀서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영화 기자분들 중에는 자신이 비평가, 평론가로 불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영화 기자의 일과 평론가의 일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물론 저널리즘은 비평과는 굉장히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또 어떤 글에서는 결국 겹쳐진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런 겹쳐지는 부분들을 포함하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새롬: 그게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비평이든 저널리즘이든 어떤 영화가 좋다, 나쁘다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주 단순화하면, 그런데 연구가 그것과 다른 점은 안 좋은 영화를 갖고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같아요. 안 좋은 영화나 묻힌 영화, 그러니까 꼭 다시 볼 필요는 없지만 이런 게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연구가 비평과 다른 부분 같아요.
임유빈: 맞아요. 그리고 비평이 만약 대상에 대한 좋다, 나쁘다의 그런 가치 판단적인 부분도 포함한다면, 현재 공적으로 비평이 활동하는 부분에서는 대상이 되는 영화를 상찬해 줘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제 비평가들이 모더레이터나, 프로그램노트를 쓴다던가, 왜 그랬을 때는 항상 좋은 말…
김명우: 결론적으로는 아무튼 해당 영화에 대한 어떤 좋은…
박동수: 그렇죠, 비판을 하더라도 결국 어느 정도 좋은 지점을 끌어내서 이야기를 해주면서 마무리되는…
김명우: 그리고 인디스페이스 지원사업에서 ‘비평가’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한국 독립영화를 많이 보고 글을 쓰는 역할로서의 어떤 것을 넘어, 꼭 지면에서의 비평가가 아니더라도 여기 모이신 분들이 다양한 필드에서 활동하고 계신 것처럼 여러 가지, 그러니까 영화를 감상하는 방법이나 영화를 어떻게 접하고 비평하는지에 대한 여러 문화를 넓히고자 하는 시도 같아요.
배새롬: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저는 비평 지원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어디에 글을 실어준다는 기대감이 제일 컸어요. 그것 말고는 생각할 게 없기도 했어요. 그런데 사실 요즘 영화평은, 특히 비평이라고 할 만큼의 무게가 있으면 사실 쓰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같잖아요. 쓰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보고 또 보는 사람이 쓰는 굉장히 극소수의 죽지 않는 취미라, 글쎄 이게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임유빈: 그러게요. 영화를 무료로 마음껏 보게 해준다는 것이 크기도 하지만, 또 작은 것을 소중하다고 생각해 온 것 같기도 하고요.
김명우: 맞아요.
박동수: 저희 처음 모인 날에 인디스페이스 관장님이 할 수 있는 게 그것이라서 그냥 그것만 한다고 말했었잖아요. 물론 지면을 제공해 주셨다면 가장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하고요. 사실 지금 이 신청을 해놓고 활동을 안하시는 분들도 많다고 하시니까, 활성화를 위해서는 저희끼리 모이는 자리라든지 다른 몇 가지 아이템들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의 한국독립영화 감상: 영화사, 영화제, 영화학과의 마주침
임유빈: 좋습니다, 그럼, 이제 한국의 독립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가볍게 시작하겠습니다. 최근에 인상 깊게 보았던 한국의 독립영화가 있다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최근작이 아니어도 좋으니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박동수: 최근 1년 사이에는 <괴인>(2022)이라든가 <다섯 번째 흉추>(2022)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조금은 개인적인 이유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공개된 남아름 감독의 <애국 소녀>(2023)도 되게 재미있게 봤습니다. <애국 소녀>의 감독님이 저랑 동갑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거의 저와 비슷한 필터로 이병박근혜부터 지금까지를 통과해 오면서 여러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동년배의 감각으로 엮어내는 것을 보는 게 재밌더라고요. 그리고 영화에 드러나는 감독님 가족의 상황과 저희 가족의 상황도 약간 비슷한 면이 있었어요. 영화 속에서 자신과 비슷한 어떤 존재를 볼 때 흥미가 많이 가듯이,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독립영화가 그런 면에서 미시적이고 지엽적인 측면인 동시에 종종 흥미로울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또, 최근작은 아니지만 이번에 전주영화제의 객원 프로그램으로 참여하신,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음악가, 작가, 감독, 배우 등으로 활동하고 계신 백현진 님이 뽑은 김지현 감독님의 <뽀삐>(2002)라는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에서 백현진 님이 주연이고요. 뽀삐라는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이고, 한국에 이런 급진적인 동물 영화가 2002년에 나왔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리고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영화제가 아니라면 없더라고요. 독특하고 실험적이고 충분히 재미있는 독립영화들이 90년대와 2000년대에 많았다고 생각하는데, 볼 방법이 많지 않다는 게 항상 아쉽다는 생각을 한편으로 했습니다.
임유빈: <뽀삐>를 말씀해 주시니까, 저는 동물이 나오는 최근의 작업들이 생각났습니다. 장윤미 감독님이 하고 계신 단편 작업들, 서울동물영화제에서 <어떤 곳을 중심으로 하여 가까운 곳>(2021)을 보게 됐는데 그런 작업들이 요즘 눈에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동물을 출현시키는 방식에도 관심이 많이 가고, 그런 맥락에서 차재민 작가님의 <엘리의 눈>(2020) 같은 경우도 인상깊었어요. <어떤 곳을 중심으로 하여 가까운 곳>이나 <엘리의 눈>이 매체를 통합시키며 기존의 다큐멘터리 방식과 다르게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배채연 감독님의 <채민이에게>(2020) 같은 작품이 실험 영화 혹은 미술계의 작업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분들의 작업을 영화제에서 보게 됐을 때 생기는 흥미가 있어요. 작가님들 같은 경우에는 스스로를 어떻게 구분하고 있을지도 좀 궁금하고요. 명징한 분류가 그다지 필요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는지 혹은 감독이라고 생각하는지, 영화제는 더 많은 관객을 만나는 장소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미술관 전시 외의 부가적인 어떤 장소라고 생각하시는지와 같은 것들이요. 이런 동시대 작품들과 함께 최근에는 임오정 감독님이나 신재인 감독님 같은 여성 독립 영화 감독들의 작업을 찾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배새롬: 저는 그 망한 오타쿠 얘기 있잖아요. 아, 오세연 감독님의 <성덕>(2021)을 한국영화 중 재미있게 봤어요. 제가 비평가 지원 사업에서 처음 국장님과 만나서 '독립영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사실 저예산 영화와 독립 영화의 구분을 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시네마테크에서 볼 수 있느냐 아니냐가 저에게는 가장 큰 구분의 기준이었어요. 그런데 국장님이 정말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해있느냐를 기준으로 독립영화와 독립영화 아닌 영화를 구분하시더라고요. 제가 최근 본 것 중 그 정의에 맞는 독립영화라면 아무래도 <성덕>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성덕>은 독립 영화인데 되게 메이저한 굉장히 상업적인 매체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네요.
임유빈: 그런데 또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영화 학교 학생이 만든…
배새롬: 그리고 또 김현 감독의 <라이츄의 입시지옥>(2016)이요. 그건 또 독립 영화라고 생각을 안했던 것 같아요. 인터넷에서 보게 된 웃긴 학생 작품으로 보기도 했고, '이건 진짜 독립 영화'라고 생각했던 건 김동령, 박경태 감독님의 <거미의 땅>(2012)이요. 그 작품은 탈영역 우정국에서 봤어요. 요즘은 또 미술관과 극장도 많이 겹치는 거 같아요.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에서도 실험 영화 같은 것이 한 작품 정도 있었거든요. 당시 서울 찍은 걸 보여주는 건데, 그러니까 영화라면 영화죠. 영상이니까. 뭐 그런 걸 봐도 그렇고, 요즘 미술관에서도 영화 같은 것을 많이 보여주잖아요. 실험 영화, 독립영화, 아무튼 영화라고 부르지는 않는, 미술관에서 보는 영상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생기는 건가, 아니면 극장이 아니라 미술관에서 보는 영화라는 것이 생기는 건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박동수: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김구림 작가 전시를 하고 있잖아요. 그분이 만든 <1/24초의 의미>(1969)도 그렇고, 한국에서 영상 기반으로 실험적인 작업을 했던 미술에서의 거의 첫 번째 사람이 김구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의 실험 영화, 독립 영화, 혹은 이제 단편 영화까지 그쪽의 시초 중에 하나로 김구림의 작품을 꼽는 분들도 종종 있긴 하더라고요.
김명우: 저는 역사문제를 지금 어떻게 바라보고, 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김동령, 박경태 감독의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를 인상깊게 봤어요. 또 최근 이마리오 감독님의 <작은 정원>(2022)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물론 이 영화도 재밌었지만 감독님의 지금까지의 작품들과 결이 다르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과거 <주민등록증을 찢어라!>(2001)와 같은 급진적인 영화들에서 관점이랄까, 방식이 변화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작은정원>도 노인문제나 지역문제에 대한 얘기를 다루지만, 따뜻하고 유쾌한 분위기로 표현하셨던 지점이 인상 깊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파랑새>(1986)와 같은 영화들도 지금 보기에는 화질이나 이런 것들이 많이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과거 영화 운동에서 문제시되었던 사건과 연결돼 있어서 영화사 공부하며 흥미롭게 보았던 것 같습니다.
독립영화가 되기 위한 조건: 무엇이 어떤 영화를 독립영화로 만드는가
임유빈: 각자 다양한 독립 영화를 말씀해 주셨는데요. 한국의 독립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고 했을 때 서로 생각하는 영화들이 또 전부 다르기도 하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배새롬: 제가 독립영화란 범주를 느슨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씀 드렸는데, 제게 독립영화란 이름은 이런 거였어요. 가령 예전에 친구들이 저한테 “너는 뭐 독립영화 그런 거 보잖아”라고 할 때 ‘독립영화'로 가리켜지는 영화들요. 그런 말씀 다 들어보셨어요? 그러니까 그 친구들은 CGV만 가는 친구들인 거예요. “넌 독립영화 보잖아”의 '독립영화'에는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있든 아니든 시네마테크에서 볼 수 있는 영화는 다 들어가는 거겠죠. 뭐랄까, 이게 부정확하다면 부정확한 범주이지만, 어떤 영화를 인식하는 데에는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어디에서 볼 수 있느냐, 그러니까 <서울의 봄>(2023)처럼 어디서나 볼 수 있느냐, 아니면 어디를 나가서 시간표를 미리 봐야 볼 수 있느냐의 구분을 관객으로서는 먼저 하게 되니까요. 한국은 또 뭐랄까, 저예산이 아닌 정말로 자본과 독립해서 만든 영화가 별로 없잖아요.
박동수: 사실 작품 수로는 훨씬 많지만, 볼 수 있는 곳이 없죠.
임유빈: 독립영화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 사실 2018년에 개정된 독립영화 인정제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개정이 됐음에도 어떤 독립영화 인정 심사 이런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의문스러운데요. 그러한 심사가 사실 독립영화에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도 그렇고요.
박동수: 기본적으로 이 제도 자체가 생긴 이유가 독립영화 전용관이 생기면서입니다. 독립영화 전용관에서 틀기 위해서는 독립영화가 뭔지 법적으로 규정이 되어 있어야 되고, 그렇기 때문에 이 규정이 필요한 건데, 기존의 예술 영화 규정은 따로 있었어요. 예술영화에 관해서는 2006년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을 통해 법적 규정이 되었고, 개정이 됐음에도 여전히 극장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기 때문에 극장 개봉을 하지 않는 단편 영화 등은 애초에 제도적으로 독립 영화의 지위를 얻을 수가 없죠. 공동체 상영으로만 상영되는 독립 영화라든가, 극장 개봉을 거치지 않고 영화제에서 튼 다음에 바로 OTT나 VOD서비스를 하는 영화와 같은 경우에는 독립 영화라는 인정을 사실 받을 필요가 없는 경우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극장이라는 장소와 결부되어 있는 기준 자체가 좀 추상적이에요.
독립 예술 영화 인정에 관한 업무 규정이라는 게 있는데, 이걸 보면 (1) 상업영화가 다루지 않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쟁점과 인물을 깊이 있게 다룬 영화 (2) 편견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표현으로 차별화된 경험을 전달하는 영화 (3)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고 대안적 의제를 제기하는 영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고, 이에 따라서 심사위원들이 판단합니다. 추가적으로 세칙이 있는데 대형배급사의 작품을 제외하는 규정이 있고 자동 인정 기준이 있어요. 자동 인정은 영진위의 독립예술영화 지원 사업을 받아서 제작되거나 배급되는 영화, 정부나 지자체, 공공기관의 지원 사업을 받은 영화, 3년 이상 개최된 국내 영화제에 상영이 된 영화, 배급사가 신청한 단편 영화 등으로 되어 있더라고요. 이런 기준들 자체가 추상적이고 영화제에서 상영되지 않거나 배급사가 없거나 제작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만들어진 영화들은 법적으로 독립 영화가 아니게 되는 경우들이 있죠. 그런 복잡한 면이 있어요. 제 지인이 대학교 졸업 영화를 작은 배급사를 만나 개봉하려고 독립 영화 신청을 넣었는데 반려된 적이 있는데, 이유를 모르겠어요. 근데 한 번 반려되고 다시 재신청을 했다가 또 반려가 되면 다시 재신청을 못하거든요. 재신청을 한 번밖에 못해요.
임유빈: 그럼 편집을 하던가 뭔가 달라져야겠네요?
박동수: 애초에 기준이 극도로 추상적이다 보니까 그걸 맞출 수가 없는 거죠. 그런 여러 가지 맹점들이 있어요. 그렇게 보면 사실 못 만든 독립 영화도 독립 영화야 하고, 물론 제 지인의 영화가 못 만든 영화라는 것은 아니고요. 영화의 퀄리티가 문제인 게 아니기 때문에, 물론 현실적으로 이런 제도가 필요한 건 알겠지만 새로운 개정 등이 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배새롬: 독립 영화는 사실 그런 것으로부터 독립을 해있는 것이 이상적일 텐데, 돈과 지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으니까 역설적으로 제도에 더 매이네요. 그냥 내가 영화를 만들고, 나는 감독이고, 이건 영화야 하면 되어야 하는게 독립정신, 독립 영화 정신, 그런 것일 것 같은데 나라에서 독립영화로 인정을 해줘야 독립영화관에서 틀 수 있고, 이런 것들이 아쉽네요.
임유빈: 저는 특히 독립영화 자동 인정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영화제에서 틀거나 배급사가 있거나 하는 것들이 자동으로 인정되므로 매우 편리하면서도, 결국에 우리가 알 법한 영화만 결국 독립영화가 되는 것이라는 점에서요. 결국 그 우리가 알법한 영화, 첫번째로 택해지는 영화들은 누군가 이미 걸출한 사람들의 심사를 받은 것이고, 저는 그래서 독립영화 심사라는 것이 개인이 넣으면 심사를 받고 인정을 받는 것인 줄 알았는데, 만약 반려당하는 영화들이 있다면, 그 심사가 어떤 측면에서 검열, 그러니까 영화답지 못한, 영화 이하의 영화라든지 혹은 뭔가 내용과 밀접한 정치적 측면에서의 검열이 작동하는 것들이 있는지 그 심사 기준이 무엇인지가 궁금하긴 하네요.
박동수: 심사 기준은 제가 얘기해 드린 세 가지가 전부입니다.
배새롬: 그 기준에 의하면 <라이츄의 입시지옥>이나 김진열 감독의 <남매와 진달래>(2004) 같은 영화는 독립영화가 아니겠네요. 제도는 현실적으로 무언가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보조를 해주는 취지에서만 만들어졌을 텐데, 이제는 제도의 인정을 받아야 되는군요.
박동수: <남매와 진달래>가 만들어졌을 때는 이런 제도들이 아예 없었죠. 사실 그래서 재미있는 건 종종 한국 고전 영화가 재개봉을 한다거나 그럴 때 배급사들이 약간 꼼수처럼 예술 영화 인정을 받는 게 아니라 독립 영화 인정을 받는거에요. 예를 들어서 <화녀>(1971)가 재개봉을 한다면, 그리고 이걸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에서 틀고 싶다면 그렇게 하는 거죠.
임유빈: 그리고 배급사 기준도 수익률로 따지잖아요.
박동수: 사실 그런 난점이 되게 많죠. 작년에 인디스페이스와 '독립영화하다'라는 제목의 기획전을 했었어요.1) 저는 독립 영화가 무엇이냐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가장 단순하게 영진위의 독립 영화 인정 제도가 보여주고 있듯이 정의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정치적으로 정치적인 독립이건 경제적인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건 혹은 제도로부터의 독립이건 어떤 식으로든 독립한다라는 어떤 태도가 있잖아요. 그 태도 자체는 상업영화에서의 독립 혹은 상업영화에서 잘 나가는 장르, 예를 들어서 마동석으로부터의 독립이다라고 얘기를 할 수도 있겠죠. 저는 그게 태도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독립영화하다”라는 제목도 독립영화를 어떤 실천과 태도로 바라봐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에서 얘기를 했었던 것 같아요.
김명우: 사실상 독립영화가 나오게 된, 그러니까 예전에 독립영화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이전에 작은 영화, 소형 영화 이런 식으로 정의가 되고 불리어졌던 것들도 사실상 동수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태도의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도 딱 정의된다기보다는 예를 들어 80년대 민중운동과의 결합을 통해 정치적 독립을 표방하고 정치적인 성격과 많이 이제 결합이 된 것처럼. 결국 지금도 딱 규명할 수 없지만 항상 무언가로부터의 독립을 표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임유빈: 맞아요. 그런 의미에서 독립영화의 태도나 이런 것들을 포함해서 독립 영화의 명칭에 관해서 고민하게 되는 것이 있지만, 저는 이제 독립영화라는 개념이 그 자체로 그냥 받아들여지는, 되게 범주화할 수 없이 넓은 것 자체가 재미있어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이라고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선언문에는 되어 있지만, 그게 1998년도 글이잖아요.2) 동시대 영화 산업과 맞아떨어질 수는 없지만, 그러한 부분도 포함하면서, 또 이러한 범주의 불가능성 자체가 지금의 독립영화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배새롬: 사람들이 예술영화라고 부르는 영화와 독립영화라고 부르는 영화가 많이 겹치는 것 같아요.
김명우: 관계가 좀 그렇죠. 저는 좀 피상적인 느낌으로는 뭔가 예술영화는 형식적으로나 미학적인 그런 느낌의 새로운 접근들이 많은 영화를 일종의 예술영화라고 인식했었던 것 같고, 독립영화는 사회적인 문제나 메시지를 중점적으로 다룬 영화라고 인식했던 것 같아요.
박동수: 많이 혼용되고 있죠.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라고 붙여서 운영이 되잖아요. 사실 그리고 예술영화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영화들은 수입된 영화들 해외 영화인 부분도 있고요. 아마 많은 관객들이 이렇게 생각을 할 텐데, 예술영화 안에서 해외 영화는 예술영화라고 부르고 한국 영화는 독립영화라고 부른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사실 예술영화라는 범주 자체도 상당히 되게 애매하잖아요. 지금은 <올드보이>(2003)와 <만추>(2010)가 다 예술 영화로 인정받았어요. 최근에 재개봉하면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그 영화들이 다 상업영화였잖아요. 하다못해 고다르의 영화도 상업영화였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예술영화는 어떻게 보면 독립영화보다 훨씬 더 마음대로인 범주라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한국에서의 예술영화가 명우 님이 얘기하신 대로 어떤 미학적이고 예술적인 성취에 관한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한국 독립영화의 출발점을 79년 얄라셩 결성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전에 이제 이익태의 <아침과 저녁 사이>(1970) 영화라든가 아니면 유현목의 씨네포엠, 김홍준과 황주호의 <서울 7000>(1976)이라는 8mm영화라든가 그런 걸로 꼽는 분들도 종종 있잖아요.3) 그리고 카이두도 빼놓을 수 없고요. 카이두도 얄라셩보다 훨씬 앞서서 진행됐다 보니까 한국의 초기 독립영화는 기본적으로 실험 영화의 성격을 많이 갖고 있고, 그렇다 보니 같이 붙어갈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결국 영화 자체의 미학적인 것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임유빈: 저는 어떻게 보면 본질적인 이야기이지만, 제가 한국의 예술영화에 대해서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된 이유가 한국의 영화법이거든요. 한국의 영화법은 영화를 산업으로 규정하고 있으니까요. 예술로 규정하는 프랑스나 이런 나라들과 다르기 때문에 한국 영화는 어쨌든 산업이고, 그러니까 현재 정부도 뭐 앞으로 5년 안에 칸영화제 같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작품 10개를 만들라고 하는 식으로 이상한 대응을 하고 있는 거고요.
조금 더 천천히 세분화해서 이야기한다면 이런 한국 독립 영화가 우리가 말한 대로 매우 다양한데, 독립영화라는 범주를 한국 영화의 담론장 내에서 계속 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것을 쓸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이런 말을 느슨하게 사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아니면 다른 말이 적절할지요.
박동수: 저는 오히려 독립영화라는 범주가 자연스럽게 계속 쓰이다 보면 일종의 게토화 같은 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어서 영화 운동 세대로 다시 돌아가 보자면, 그때는 이제 80년대 90년대 영화 운동을 하던 사람이 90년대 중반부터 충무로로 많이 진입했잖아요.4) 홍기선 감독님 같은 분도 결과적으로는 충무로 영화를 만드셨고 스타 배우와 작업하셨으니까요. 갈수록 배우들은 상업과 독립을 많이 오가는데 감독들은 왜 그렇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 상업영화에 진출하는 독립영화 감독이 최근에 있었느냐 하면은 딱 2010년대 초반에 데뷔했던 엄태화, 조성희, 윤성현 세대까지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사실 그분들이 만든 독립영화조차 어떤 독립영화를 표방했다라기보다는 한예종 졸업 작품 아니면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 등의 경우가 많았어요. 예를 들어서 <파수꾼>(2010)이나 <남매의 집>(2009) 등의 영화들은 다 졸업작품이잖아요. 졸업작품으로 성공하고 그 이후에 다시 독립영화를 만들지 않아요.
김명우: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이렇게 단편 영화나 상업영화를 만들기 전에 어떠한 습작처럼 마치 독립영화를 발판 삼아서 다음 영화를 만드는 그런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박동수: 그런데 최근에는 그 발판도 없는 것 같아요.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들 보면, 물론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학생영화나 단편영화를 하셨겠지만, 예를 들어 올해 추석에 개봉한 영화 중에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2023)이나 <잠>(2023)과 같은 영화들은 독립영화 쪽에서 활동하던 분들이 상업영화로 넘어간 게 아니라 애초에 상업영화에서 조연출 하시던 분들이 감독으로 데뷔를 하신 거잖아요. <범죄도시2>(2022)의 이상용 감독도 그런 케이스에요. 그런 경우들이 훨씬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더 강하게 분리되고 있어서, 그런 범주가 계속 쓰일 수밖에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임유빈: 제가 문득 생각이 드는 건, 독립영화에 대한 오염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들이 어쩌면 마케팅 시장에서 개별 영화를 독립영화라고 마케팅하면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의심하고 있어요. 그게 어떤 특정 관객을 타깃으로 두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랄까 독립영화라고 패키징해서 됐을 때 사람들한테 어떤 것들이 소구되는 지점일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명우: 뭔가 독립 영화라고 하는 그 감성이랄까요? 그게 있나 봐요.
임유빈: 저희가 계속 독립영화를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한국의 독립영화를 이야기할 때 명우 님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영화 역사에서 80~90년대의 학생 영화의 활동을 시초로 보고 이후의 발전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를 논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독립영화계 발전의 연속성, 혹은 단절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박동수: 최근에 저는 금동현 영화연구자의 글들을 보면서 한국의 고전 영화에 대해 생각할 일이 좀 많긴 했습니다. 검열이라는 굉장히 거대한 벽도 있었고, 군부 독재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 영화가 어떻게 보면 연속성이 없잖아요. 과거의 감독들이 길게 현재까지 활동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또 그 감독들이 신작을 찍는다고 해서 100억짜리 영화를 찍지도 못하고요. 새롭게 등장하는 감독들이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가리지 않고 한국의 과거 영화들을 얼마나 볼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저희처럼 뭔가 과거의 영화들을 연구한다거나 비평을 하는 등 어떤 직업적인 필요가 있지 않은 이상 잘 안 보게 되잖아요. 그냥 “재밌어서 한국 고전 영화 봅니다”하는 사람은 영화를 새로 만드는 사람들 중에 거의 없다 보니까. 저는 그래서 그 사이를 이어주는 감독은 지금 아직 김기영밖에 없는 것 같거든요.
김기영은 봉준호나 박찬욱이나 김지운 같은 '빅네임'들에 의해서 다시 소환되고 그들 영화에 인용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럼 그 외에 다른 감독들은 얼마나 그렇게 되는가 생각해 봤을 때 기껏해야 이만희의 몇몇 영화 정도 아닐까 싶은 정도에요. 나머지 영화들은 그냥 오로지 고전 혹은 옛것의 위치에만 있는 거죠. 저는 그게 좀 더 빨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당장 90년대 충무로 영화들만 봐도, 일단 그 영화들을 보는 것부터 어려울뿐더러 뭐가 있었는지 탐색하려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어떤 단절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의 굉장히 개인적인 감상인데, 제가 옛날 영화들 그렇게 본격적으로 찾아보기 전까지는 한국 영화 역사가 그런 느낌이었어요. <하녀>(1960), <오발탄>(1961)이 나온 때가 있고 확 건너뛰어서 90년대, 2000년대에 이르는. 저는 독립 영화에도 좀 그런 부분들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명우: 그렇죠. 뭔가 이렇게 황금기로 대표되는 그 시기에 영화들로 연속되어 있는 듯한 영화사의 계보가 있죠.
임유빈: 저는 한국영화의 연속성에 대해 생각하다가, 결국 한국영화사에서 카프(KAPF) 영화가 있잖아요. 1925년도 즈음의 식민시기 영화들이 계속 있고, 이후 실험 단체들, 동수 님이 이야기하신 씨네포엠과 같은 단체들이 있어왔고, 그리고 카프 작가들이 북으로 많이 갔었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이제 80년대 후반부터 그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요. 이런 식의 논의들이 좀 연결된다면, 저는 충분히 한국영화에도 연속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이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들, 뭐라고 해야 할까요. 현재 독립영화역사의 공백은 역사를 쓰는 세대가 결국 자신들이 가장 잘 알 수 있는 세대의 이야기를 정전으로 만들면서 생기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계속 새로운 독립 영화가 없다, 독립영화는 다 무너졌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학생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을 주축으로 하던 세대들이 서울영화집단의 『새로운 영화를 위하여』(학민사, 1983) 같은 일명 영화 교과서 같은 책을 만들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그런 지점에서 이런 단절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생겨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카프 영화에 대해서 처음 인식한 것도 사실 테드 휴즈라는 미국의 연구자예요. 한국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지만요. 저는 그때까지 한국영화사에서 당시의 영화들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어쨌든 이런 연결을 서툴게나마 기록하는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다면 이제 누가 이런 것을 기록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의논되어야 할 것 같아요.
먼저, 시각예술에서의 비평 사업을 이야기하면 영화 쪽에서도 연구자나 비평가들이 이런 것들을 발굴하고 계속 쓰는 것도 필요한데, 미술에서는 큰 범주로 시각예술지원사업 안에서 어떤 작업을 발굴하고 그것에 대한 비평 서적을 지원해 준다던가하는 식으로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를 발굴하고 연구하는 그런 비평이나 연구의 지원 사업이 있어요. 그런데 한국 영화계에서는 제작 지원이나 극장 지원 말고는 거의 지원 사업이 없습니다. 또 이런 것들이 결국 개인의 몫으로 가면서 좀 분산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인이 하기엔 너무 방대한 작업이기도 하고요. 한국영상자료원이 발굴과 복원 사업을 계속해서 하고 있지만, 대학에서나 독립적으로 영화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도 그런 부분들에 대한 절대적으로 지원이 없기 때문에, 문화연구는 있지만 영화연구는 굉장히 협소하다는 측면에서 영화학이나 영화사 연구에 대한 지원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명우: 지금까지는 사실 예를 들어서 한국독립영화의 역사 혹은 비제도권 영화계의 역사라고 할 때, 서울영상집단에서 발행한 『변방에서 중심으로』(시각과 언어,1996)라는 책을 중심으로, 실제 중요한 저작이기도 했지만요. 이제 그 책을 중심으로 기술된 한국독립영화 역사가 지금껏 계속 흘러왔다면 지금 유빈 님이 말씀해 주셨던 그런 카프 영화는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에 이제 해방 직후에도 조선영화동맹이라든지 일련의 움직임이 있었죠. 그러니까 그 사회변혁운동의 일환으로서의 영화운동 역사가 또 있는데, 사실 그런 지점들의 연속성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80~90년대에도 분명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이효인 선생님의 『한국영화역사강의1』(이론과 실천,1992)라든지 변재란 선생님의 석사논문 「1930년대 전후 프롤레타리아 영화활동 연구」라든지 한국의 영화사를 이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보려고 하는 그런 시도가 있었지만, 그런 지점을 지금까지는 그렇게 크게 주목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죠. 그래서 그러한 연속성으로서의 한국의 독립영화사를 본다면 다시 새롭게 다가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박동수: 동의합니다. 일단 기록물 자체가 적고요. 카프 영화 얘기도 해 주셨지만, 그 영화들은 애초에 필름조차 없다 보니까 확인할 수가 없고, 기록물이 없다는 지점이 그러한 단절을 더 많이 부추기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옛날에 뭐가 있었는지 알고 싶은데 그거는 진짜 한 번 파봐야 나오는 거잖아요. 그러다가 어쩌다 파본 사람들이 결국 또 이걸 글 쓰는 사람이 돼서 책을 내고 논문을 쓰고, 그것의 반복인 것 같고. 하지만 굉장히 산발적인 움직임이기 때문에 어떤 통시적인 한국 영화사와 한국 독립영화사라는 게 제대로 기술된 적이 아직 많지 않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성하훈 기자님의 책 『한국영화운동사』(푸른사상, 2023)가 그래서 굉장히 중요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요.
제 마음대로의 생각인데, 제가 생각하는 독립영화의 단절은 80~90년대 영화운동사를 모른다는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의 독립 영화인들이 그게 있었다는 것은, 누가 뭘 했는지 몰라도 최소한 알고 있거든요. 제가 느끼는 건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의 영화들을 모르고, 어떻게 보면 영화 운동 때 만들어졌던 영화들보다 그때 영화들이 더 많이 유실됐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에 독립 영화의 메인은 비디오 영화들이었고 '십만원 비디오 페스티발', '인디포럼', '활력연구소', 그리고 부산에서도 그런 비슷한 영화제가 있었는데, 그 영화제들에서 상영되는 영화들 중에 지금 볼 수 있는 거는 거의 없거든요. 왜냐하면 다 비디오로 만들어진 영화들이고, 당시에 그것들을 제대로 아카이브 하기에도 여러모로 부족한 면이 있었고요. 대부분이 길지 않은 기간 동안만 운영된 영화제들이었기 때문에 기록에서 지워진 부분도 있어요. 그런 영화들이 중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마음대로 한국 독립영화의 어떤 시기를 구분하자면, 유현목 감독이 활동했던 60년대 말부터 카이두의 활동과 얄라셩 창립 전까지가 한국 독립 영화로 가는 길을 깔아두는 일종의 준비 단계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얄라셩 등 대학 중심의 영화집단이 등장하고, 90년대 중반까지가 약간 영화운동으로 이어져 장산곶매, 서울 영화 집단 등의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했죠. 이 영화운동시기가 1기 독립영화랄까요. 그리고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는 독립영화협의회, 한국독립영화협회, 인디포럼, 미디액트 등등 되게 많은 게 생겼잖아요. 서울독립영화제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도 그 시기이고요. 인디스페이스처럼 '독립영화전용관'이 등장하기도 했고요. 딱 그 시기부터 독립 영화의 자족적인 시기가 왔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그때가 어떻게 보면 제도적인 게 만들어지던 시기다 보니까 오히려 자연스럽게 제도로부터 독립하게 되는 이상한 시기였던 것 같아요. 이후 2010년대에 들어서 CGV 무비꼴라쥬(현 CGV 아트하우스)가 들어오고 <워낭소리>(2009) 등의 흥행을 밑바탕으로 상품화가 진행되면서, 2010년대 중반이 되고 나서부터는 독립 영화의 상품화 시기 혹은 산업화 시기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독립 영화의 산업화 시기와 독립 영화의 자족적인 시기 두 시기 사이에 미싱 링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영화제의 장이라든가 어디 협회의 장이라든가 여전히 많은 분들이 두 시기 사이에서 연속성을 가지고 계속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제가 이곳들에 신입으로 들어갔을 때, 이 사람들의 역사와 이 사람들이 무슨 영화를 보고 만들었는지를 알고 싶은데 볼 수 있는 경로가 사실 거의 없단 말이죠. 그런 단절이 굉장히 크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배새롬: 그건 한국에서 더 이상 운동이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90년대 이후 현실과 관련이 있을까요? 운동으로서 영화는 민주화 이후 90년대에도 이어졌다고 하셨는데 그때 시민운동 같은 게 많아졌잖아요. 87년도 이후에 시민운동 같은 것이 잠깐 있었지만 이제는 운동이라는 것 자체가 되게 궤멸된 느낌이 들어요. 영화계도 그것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것 같고요.
박동수: 저는 그래서 <파산의 기술>(2005)이 정말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영화의 내용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87년 6월 혁명의 성공 이후에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검열도 없어졌으니 86세대는 승리했다는 서사잖아요. 그 서사가 사실 완전한 승리가 아니라 절반의 승리이고.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의 가속화와 함께 86세대가 시장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정치와 사회 경제에 접근했고, 그러면서 나타나는 굉장히 많은 부작용들, 이를테면 대량해고라든가 가계부채와 같은 것들을 보여줘요. 그런 것이 여러 레이어들로 복잡하게 쌓여 있고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라는 얘기를 하거든요. 영화 마지막에 6월 항쟁을 기념하는 '386 콘서트'를 서울광장에서 하면서 웃음을 지으며 아이들이랑 뛰어노는 활력들을 보여주면서 끝나는데, 영화가 보여준 역사가 한국 영화가 밟아온 역사와도 굉장히 비슷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CGV랑 한국독립영화협회가 같이 펀드를 만든 것도 2000년대 초반이었고, 영화 운동 하던 사람들이 충무로에 자리 잡고 영화들을 쏟아내기 시작한 게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의 일이잖아요. 그것들이 다 <파산의 기술>에서 묘사한 “파산으로 가는 길”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한편으로 또 듭니다. 물론 그게 봉준호의 <기생충>(2019)으로 정점을 맞이한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만들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상 발전할 곳이 없을 때까지 너무 빠르게 팽창시킨 시장주의의 말로라는 생각도 들어요.
임유빈: 그리고 저는 말씀하신 386세대나 운동권의 기성세대들이 결국 젊은 세대한테 요구하는 것도 그때와 같은 어떤 활기나 그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있다는 것이 굉장히 문제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지점에서 운동의 부재가 어떤 독립영화 운동의 역사랑 맞아떨어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독립 극영화에 대한 어떤 격하라든가, 영화계의 그런 평가 이런 것들이 사실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실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배새롬: 한국 영화계에서 운동이라고 할 만한 가장 마지막은 스크린 쿼터 사수였던 거 같아요. 스크린쿼터제도 나중에는 많이 축소됐지만, 상대적으로 이 운동이 잘 됐고 그게 한국 영화의 시장 크기를 많이 키웠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더 이상 영화계 내부에서 운동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많지 않아 보여요. 적어도 상업영화계에서는요.
임유빈: 근데 지금 최근에 이제 윤석열 정부 들어서면서, 영화제의 예산 삭감이나 원주 아카데미 극장 이런 사태들이 되돌아왔고, 다시 이제 안타깝게도 운동하는 힘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새롬: 그런데 원주 아카데미는 왜 없어진 거예요?
박동수: 간단히 설명드리면 그전까지 3선 민주당 시장이었는데 그 사람은 원주 아카데미 극장이 문화재적으로도 가치가 있으니 기존 극장 건물을 유지한 채 복합 문화 공간으로 쓰려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2022년 지방선거에서 시장이 다른 당으로 바뀌면서 일종의 전임자 지우기에 들어간 거죠.5) 또, 최근에 공동체 상영이라든가 그런 상영 활동가가 받을 수 있는 지원 사업도 예산 삭감 중에 하나로 다 날아가 버렸죠. 다른 이야기지만 오늘 강릉시영상미디어센터도 내년도 예산이 전액 삼각됐다고 하더라고요.6)
배새롬: 전액 삭감이라는 헤드라인 요즘에는 하루에 한 번은 보는 것 같아요.
임유빈: 성하훈 기자님 『한국영화운동사』(푸른사상, 2023) 1부 첫 번째 줄을 보면 영화계는 “진보와 보수가 9대 1”이라고 기술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런데 사실 그것도 지금은 한 때 이야기라고 느껴지거든요. 저는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 발언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책임에 대해서.
배새롬: 지금 전주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 정준호인 것도요.
박동수: 저는 그때 진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진보적인가를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동수: 이제 저희는 극장부터 OTT에 이르는 영화 플랫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시네마테크들에서 반복되는 인기 있는 거장의 회고전, 특별전이 너무 잦은 빈도로 한정된 작품들만 다뤄지지 않고 있는가라는 얘기가 있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오큘로』 5호에 이도훈 평론가님이 “문지기의 임무: 동시대 한국의 시네마테크와 영화제 프로그래밍”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신 게 있거든요. 이 글이 떠올라서 다시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새롬: 제가 그 질문을 썼을 때는 그걸 몰랐어요. 기획전이 그렇게 구성되는 이유 중 돈과 관련된 이유가 가장 크단 거요. 이 돈과 관련된 이유가 결국은 뭉텅이로 사와서 한정된 기간에 무한으로 틀 수 있다, 그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모르고 기획전을 봤을 때는 되게 무난하고 한국 사람들이 무리 없이 좋아할 만한 작가들을 많이 틀어준다는 인상이었어요. 너무 난해하거나, 너무 정치적으로 어떤 메시지가 강하지 않은 감독들 있잖아요. 에릭 로메르나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들이요.
임유빈: 한국의 시네마테크라고 하면, 한국영상자료원이나 서울아트시네마, 부산 영화의 전당 프로그램이 익숙한데요. 어쨌든 지금 시네마테크의 수장도 그렇고, 내부의 문제가 많이 있잖아요. 문제를 잘 봉합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제나 극장의 큐레이션도 어떤 새로운 영화사 서술이나 어떤 비평의 활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이 거의 멈춰져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세계3대영화제라고 하는 1세계의 영화제에서 한 프로그램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국내의 어떤 영화제에 위상을 세우는 것도 아니고요. 가져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 영화가 무능력한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한국 영화 관객에게 새로운 영화란 무엇일까, 아트시네마나 영화제에서 만나야 하는 영화는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박동수: 사실 한국에서 시네마테크가 시작된 것도 이제 80년대 말쯤이잖아요. 그때 '영화 공간 1895', '문화학교 서울' 이런 거 생기고, 광주의 조대영 선생님이 만드신 굿펠라스라든가 아니면 부산의 '시네마테크 1/24'이라든가 대전이나 대구에도 그런 것들이 있었고요. 그런 실천들이 모여서 90년대에 이제 한국 시네마테크 협의회라는 게 생기고, 그럼으로써 문화학교 서울을 이어받아서 서울아트시네마가 생기고 한 역사들이 있죠. 결국 한국에서 시네마테크는, 물론 문화원 같은 것들을 빼놓을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민간 단체의 성격이 좀 더 강하게 있었던 것 같아요. 중요한 건 그때 있었던 사람들이 아직도 그것들의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다는 것 같아요. 물론 그분들이 능력이 없고 새로운 것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얘기는 아닌데, 그때의 어떤 레퍼토리들을 여전히 하고 있다는 인상을 계속 받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들, 이를테면 상영본 수급의 문제, 예산의 문제 같은 것들이 있겠지만요.
배새롬: 저는 사실 이렇게 기획전을 반복하는 게 저한테 나쁘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못 본 영화가 되게 많고 이왕이면 극장에서 보면 좋으니까요. 근데 이 한정된 작가들 중에서도 '왜 다른 감독보다 이 감독의 영화를 자주 보여주지?' 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임유빈: 관객 점유율도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을 테고, 저를 포함한 한국 영화 관객들이 제가 생각할 때는 너무 아는 영화만 계속 보는 경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아예 새로운 영화, 처음 보는 영화는 사실 거의 관객들이 안 보고, 유명한 누군가 언급을 해주면, 따라서 보긴 하지만, 새로운 영화 다 하긴 했었어요. 뒤늦게 찾아보면 영자원에서도 했고, 아트시네마에서도 했고, 인디 스페이스에서도 했고, 근데 그걸 너무 뒤늦게 알아버려요. 아마 많은 사람이 들지 않아서 그 영화관이나 영화제도 이제는 틀지 않게 됐을 수도 있겠죠?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다면 현재 예술영화관 독립영화 예술관에 가는 관객이 많이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저는 요즘 많이 가요. 영화 티켓값이 많이 올랐는데, 예술영화관은 그렇지 않으니까 확실히 많이 가요. 그래서 코로나 끝나고는 이제 무조건 영화제나 이런 데서 영화를 진짜 열심히 보고 있는데 값이 싸서 부담이 없어졌어요.
김명우: 맞아요. 새롬 님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저도 반복해서 기획전 자주 틀면 좋긴 좋아요. 근데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프로그래밍에 대한 어떤 발굴이라든지 이런 것에 대한 시도는 별로 되지 않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전에 다른 곳에서 얘기를 나눈 것 중 하나가 사실상 한국 영화를 블루레이나 4K로 복원할 때의 영화들이 이미 유명한 영화들이란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새로 발굴하는 개념이 아니라 뭔가 이미 정전화된 그러한 유명한 영화들을 혹은 유명감독들을 자꾸만 이렇게 기획전으로 하려는 경향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책방 노마만리라고 천안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인데, 그곳에서 제가 잠깐 일을 도와드리며 상영회 같은 것을 하면 보통 안 알려진, 많이 못 본 영화를 상영하면 많이 오겠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예를 들어 박찬욱 영화는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오는 식이에요. 이미 유명하고, 다 봤을 법한 영화들을 상영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약간 새로운 시도가 더 어려워지는 그런 지점도 생기는 것 같아요.
박동수: 그래서 저는 자체 프로그래밍보다 그 바깥의 프로그래밍들이 있잖아요. 누구를 불러와서 이 영화를 얘기하게 할 것인가 같은 거를 생각해 봤을 때 거기서 오히려 신선함을 찾을 수 있고요. 그런 시도가 최근의 영상자료원에서는 그래도 많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다른 곳들에서는 뭔가 반복된다라는 인상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김명우: 그런 기획이 신선하기도 하고, 재밌는 논의들이 계속 나올 수는 있을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새로운 영화 자체를 보여준다는 인상보다도 이 영화를 통해 혹은 영화와 관련된 누구를 끌고 올 수 있는가. 예를 들어서 배우라든지 아니면 여기서 뭔가 덧붙일 수 있는 평론가라든지 거기에 걸맞는, 그런 주변부를 고려해서 프로그래밍을 한다는 느낌도 드는 것 같아요.
박동수: 그래서 저는 올해 재미있었던 건 한예종에서 진행된 모리타 요시미츠의 자주 영화 상영이 거의 꽉 찼던 게 되게 신기했어요. 어떻게 보면 마케팅과도 같이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런 영화들을 발굴해서 틀어놓으면 볼 사람들은 있는 거죠. 적어도 한 회차를 채울 정도의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다만 어떤 접근성의 문제, 예를 들어서 영자원은 너무 멀리 있다라든가 나는 서울아트시네마를 갈 수가 없다 라든가 하는 문제들이 있기는 하겠죠. 그래서 뭔가 새로운 걸 발굴해도 그것을 내가 볼 수 있는 곳에서 트느냐의 문제도 많이 들어가 있고 그렇다 보니 오히려 때 되면 보수적인 프로그래밍이 돌아오고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네요.
임유빈: 맞아요. 저도 그 회고전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회고전뿐만 아니라 올해 실험영화제에도 사람이 많이 모이게 되고, 관객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는 오즈 야스지로나 나루세 미키오도 좋지만 모두가 새로운 영화, 큐레이션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다시금 리부트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박동수: 이번 실험영화제에서 마이클 스노우의 <중앙지역>(1971)을 틀었잖아요. 3시간 동안 계속 카메라만 빙글빙글 돌아가는 작품이 매진된 게 제일 신기했어요.
임유빈: 맞아요. 그것도 다 매진되고, 아핏차퐁도 매진되고, 옵/신 페스티벌 같은 곳도 표가 되게 구하기 어렵고요.
박동수: 뭔가 두 가지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새로운 영화들을 보려는 관객층이 확실히 어느 정도 생겼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도 결국 빅네임만 본다는 인상이 있어요. 그리고 그 사이에서 한국영화는 보지 않는다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그나마 김기영 같은 경우야 인기 있다고 하지만, 임권택이라든가, 이만희라든가 이 정도의 큰 이름들도 영상자료원에서 회고전 같은 걸 할 때는 그 사람들의 가장 대표작이 아닌 이상 그렇게 매진이 되거나 사람들이 엄청 꽉 찬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배새롬: 꽉 차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나요?
임유빈: 그런데 모리타 요시미츠 자주영화 상영 때는 꽉 찼었잖아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모리타 요시미츠 기획전을 시작하기 전날 전야제로 했던 상영인데, 결국 이것도 외국 감독이라는 것이죠.
박동수: 모리타 요시미츠처럼 한국에서 80~90년대에 활동했던 감독의 회고전이나 아니면 그 사람이 학생 때 만들었던 것을 모아서 튼다라고 했을 때 몇 명이 나올까라는 궁금증 같은 게 있어요.
임유빈: 한국 감독 중 누구의 작품을 보고 싶은가?
배새롬: 한국 영화 중 그런 기획전을 연다면 배우 회고전으로도 좋은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박동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하긴 하거든요. 올해는 최민식이었어요. <쉬리>(1996)도 틀고. 그래서 <쉬리>를 처음 봤어요.
배새롬: <쉬리>를 볼 수 있었군요. 삼성이 영상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사라져서 판권자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들었어요. 감독인 강제규도 <쉬리>를 틀 수 없다고요.
박동수: 그래서 90년대 2000년대 단절 얘기할 때 얘기를 했어야 되는데, 그런 상황 때문에 못 보는 영화도 많아요.
임유빈: 저작권의 문제로 보지 못하는 영화, 그리고 결국 플랫폼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결국 그런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플랫폼인가 하는 그런 문제요.
배새롬: 요즘 유튜브로 그러한 보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가시화된 건 있는 것 같아요. 한국 고전 영화도 그렇고, 해적질을 옹호하면서 보기 힘든 옛날 영화를 업로드하는 계정이 꽤 많잖아요. 한국도 있고, 외국도 있고요. 이런 계정을 둘러보다가 유튜브의 한 외국 영화 계정에 올라온 소비에트 시절 영화 뷰 수가 천만인 걸 보고 진짜 깜짝 놀랐어요. 이런 걸 보면 카피라이트에 대해서 조금씩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더 보이는 거 같아요.
박동수: 그렇죠. 사실 시네마테크에서 너무 똑같은 것만 트니까 오히려 그런 쪽에 힘이 실리는 부분도 있긴 하잖아요.
김명우: 80~90년대 영화청년들이 비디오를 복사해서 보거나 하는, 거의 불법 상영이라고 볼 수 있는 상영으로 뭔가 새로운 영화에 대한 갈망을 풀어낸 것처럼요. 그렇게 정식으로 볼 수 없는 비디오를 보면서 그때 그들이 느낀 건 새로운 형식의 어떤 새로운 영화들이 있구나 라는 어떤 인사이트를 얻었을 것 같아요. 현재 지금의 불법 유통된 영화들에 대한 상황도 복잡한 것 같아요.
박동수: 다양한 레이어가 많이 겹쳐 있는 것 같아요. 그때는 영화를 보는 거든, 상영하는 거든 불법이었던 때이기도 하잖아요.
배새롬: 세운상가 생각나요. 빽판이라고 하는 것이 유통되던 굉장한 메카였잖아요. 포르노, 일본 망가, 온갖 것이 돌아다니던 장소요. 그런데, 이런 유통이 인터넷으로 한때 옮겨갔다가 저작권 문제가 화두에 오르면서 그런 걸 보는 건 부정적인 일이란 생각이 다수의 지지를 얻었다가, 또 요즘은 약간 달라진 것 같아요.
박동수: 왓챠 같은 경우에는 자본이 많은 곳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종류의 판권으로 영화를 가져오는 것 같더라고요. 부가판권 안에도 물리매체 판권이 있고 방영권이 있고. 스트리밍 쪽은 방영권으로 빠져가지고 덤핑으로 사왔던, 종종 DVD 샵 가면 오즈 야스지로나 히치콕 같은 감독의 거의 전작을 출시하던 그 판권 그 판본으로 그대로 올리는 경우도 많아요. 왓챠가 생기기 전에는 네이버 시리즈온 등에 다 있던 판본이긴 해요. 그래서 자막이랑 화질이 안좋죠. 심지어 몇몇 홍콩 영화는 TV 방영판이라 담배와 칼이 모자이크되어 있고요. 한국 영화에 좀 좁혀서 얘기를 하면 오히려 더 심하다고 해야 될까요? 아까 <쉬리> 얘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판권자가 소멸해 버린 경우도 많고, 반대로 굉장히 많은 단편 영화들이 왓챠나 웨이브 등으로 배급이 많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사실 자체를 좀 모르는 경우도 많고요.
배새롬: 왓챠에 단편 영화가 진짜 많은데 누가 볼지 되게 궁금해요.
박동수: OTT 플랫폼이 이것저것 있고 거기서 영화든 드라마든 예능이든 많이 만들고 있는데, 거기서 과연 독립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혹은 독립영화가 OTT 안에서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얘기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사실 OTT 이전의 영화관에서도 그랬고요. 물론 인디스페이스 같은 독립영화전용관도 생기고 CGV 아트하우스, 롯데시네마 아르떼 등도 생기고 하면서 어느 정도 설 자리가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 영화로 분류되는 해외 영화들에 많이 묻히게 되는 상황이잖아요. 저는 이 상황이 OTT로 넘어갔을 때는 완전히 비가시화된다는 점에서 좀 더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배새롬: 독립영화의 범주에 포함되는 작품은 아니어도 제작 단계에서 자본이 부족해서 좌초됐다가, 넷플릭스 같은 데 돈을 투자받아서 제작이 되고 배급이 된 경우도 있지 않아요?
박동수: 한국의 사례만 얘기를 하자면, 그렇게 만들어진 충무로 상업영화들은 대부분 이미 완성된 영화들이고 코로나19 팬데믹 때 많이 넘어갔죠. 개봉을 못하고 극장 관객이 없고, 그리고 넷플릭스는 딱 이미 들어간 제작비를 보존할 수 있는 돈 정도를 주고 작품을 사오는 거죠.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오리지널 콘텐츠라고는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걸 사오는 거고, <승리호>(2021)나 <사냥의 시간>(2020) 같은 사례가 대표적일 텐데 만드는 입장에서는 영화관에 개봉해 봤자 지금 사람도 별로 안 오는데 망하지 않을까, 그러면 이제 본전치기라도 하자 생각하고 넷플릭스에 팔아버리는 거죠.
배새롬: 한국 건 아니어도 <로마>(2018)나 <아이리시맨>(2019) 같은 것도 넷플릭스가 아니었으면 못 만들어질 영화들 아니었을까요.
박동수: 그게 굉장히 한정적인 사례인 게 대부분 넷플릭스 미국에만 해당하는 얘기예요.
임유빈: 저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게, 현재 한국의 영화 산업이나 콘텐츠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경계지대라고들 다들 많이 얘기를 하잖아요. 그러니까 콘텐츠의 질이나 이런 거랑 상관없이 1세계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시험하는 그런 것이라고 했을 때, 한국의 예술 영화라고 하는 것에 자본을 지원해줄 것인가에 대해서도 사실 알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너무 빨리 개봉하잖아요. <지옥만세>(2022)도 극장 개봉하고 이제 3개월 만에 거의 넷플릭스 개봉을 했는데요. 물론 계약 절차에서 연결되면 투자, 배급, 제작비 회수 면에서도 더 유리할테고, 합의하고 계약하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되면 관객 입장에서는 극장에서 볼 필요가 없어지게 돼요.7)
박동수: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이제 OTT에 공개가 됐을 때 이 영화들이 OTT 안에서 사람들이 많이 보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올해인가 작년인가 넷플릭스 탑텐에 되게 오래 들어 있던 저예산 에로 영화 <등산의 목적>(2015)이라는 영화가 하나 있어요. 이런 걸 볼 때, 넷플릭스가 완전히 과거에 IPTV의 자리를 꿰찼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따지면 사실 독립 영화 중에서도 좀 자극적이거나 어떻게 보면 포스터만 봤을 때 좀 저거 좀 자극적이고 재미있어 보이겠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 있어요. 과거에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2006) 같은 게 은근히 OCN에서 심야에 많이 틀고 했던 것처럼요. 근데 제가 볼 때마다 그 영화가 굉장히 많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지옥만세>나 <다섯 번째 흉추>, <괴인> 이런 것들이 넷플릭스나 웨이브에 올라갔을 때 그렇게 될 수 있는가라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물론 <박화영>(2017) 같은 예외 사례가 있죠. 진짜 소수의 말 그대로 상품성 있는 독립 영화만 결국 살아남을 수 있는 게 OTT고 그렇지 않은 영화들이 OTT 메인 화면, 소위 사용자 추천 알고리즘이라고 하는 것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많은 독립 영화가 OTT에 올라와 있는데 그게 올라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잖아요.
김명우: 독립영화가 OTT 안에서 살아남는 것과 독립영화의 본질이랄까 하는 문제가 같이 가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문제 같기도 해요. 동수 님이 말씀해 주셨듯이 지금 독립예술관에서도 사실은 그 영화를 볼까 말까한 영화들이 OTT에 올라와 있을 때 더 개인화된 선택의 여지가 많은 상황에서 굳이 독립영화를 선택할까? 선택하는 계기는 뭘까? 라는 생각은 들어요. 결국에는 넷플릭스나 이런 것들이 알고리즘에 의해서 작동이 되고 그러는데 이게 개인의 취향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것은 그룹의 취향이 작동 되는 거잖아요. 결국 과연 그 그룹의 취향이 얼마나 독립 영화에 대한 관심과 지분을 갖고 있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박동수: 사용자 추천 알고리즘이 내가 본 영화들, 드라마들에 맞춰서 추천을 해준다고는 하지만, 말씀 주신 대로 빅데이터를 통해서 돌아가기 때문에 다른 사용자들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알고리즘을 무시하고 추천하는 영화들도 많잖아요. 이를테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뭐가 나왔다 웨이브 오리지널, 티빙 오리지널로 뭐가 나왔다, <나는 솔로>(2021~)는 아무나 보지 않냐 이런 느낌으로 OTT 메인 화면에 깔리는 거죠. 그래서 결국 그 안에서 독립 영화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항상 드는 것 같아요.
임유빈: 맞아요. 그리고 지금 <지옥만세>는 탑텐에 계속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자꾸 영화를 보는 관객 풀이 너무 작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저번에 한 소셜미디어에서 어떤 유저가 <아사코>(2018)를 추천했는데 급상승하면서 왓챠 메인에 뜨더라고요. 사실 플랫폼마다 성향이 다르고, 왓챠의 경우는 영화 위주라면 넷플릭스는 과거 주말 명화극장같은 텔레비전 극장에 익숙했던 중장년세대부터 숏폼에 익숙한 아주 어린 세대까지 아우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한 지점에서 독립영화가 어떻게 유통될 것이냐의 문제가 어려워지네요.
배새롬: 그런데 독립영화가 OTT 안에서 오히려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과 별개로, 개인이 접하는 영상 텍스트의 다양성을 OTT가 확대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임유빈: 저는 아니에요. 제 경우에는 보는 시간은 확 늘었는데 보는 것의 질은 확실히 저하됐어요. 이를테면, 결국 서브컬처가 지금 메인스트림으로 계속 올라오면서 생기는 문제들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서브컬처가 질적으로 낮다는 건 아니지만, 과거 주말 명화극장이나, OCN 채널이 심야에 <등산의 목적> 같은 성인 에로 영화를 틀어줬다고 해도, 균형적으로 좋다고 말해지는 영화들도 함께 상영됐었거든요. 그런데 OTT는 아니잖아요. 무엇을 생산하고 무엇을 봐야 하는지에 대한 선택권이 더 좁아졌다고 생각해요.
박동수: 저는 지금 넷플릭스에 독립 영화를 검색했더니 독립 영화들이 쭉 나오면서 <강철 부대>(2021~)가 끼어 있는 걸 보고 약간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넷플릭스 자체적으로 마련한 독립 영화 관련 콘텐츠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사실 한국 영화가 많이 안 나와요.
김명우: 저도 동수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넷플릭스가 IPTV 같다는 그 말에 동감을 하는데요. OTT가 제공하는 콘텐츠가 다양하다고 했을 때, 다양성을 나타내는 듯한 포장을 잘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결국에는 되게 그 구조에서 상업적이고 어떻게 보면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마치 앞에서 말씀하신 <등산의 목적>의 예처럼 그런 식으로 수렴되는 이 구조에서 넷플릭스나 다른 OTT 플랫폼들이 자유롭고, 또 다양하게 콘텐츠를 소비자들로 하여금 고를 수 있다는 점을 잘 전달한 것 같아요.
배새롬: 그런 면이 분명히 있지만 이런 것들이 아예 없던 때에 비해서, 저는 OTT 이후로 접하는 건 다양해졌어요. 실제로 시청하진 않아도 ‘이런 게 있구나’라는 걸 느끼게 하는 영화들의 존재를 알게됐거든요. 예를 들면, 왓챠에 올라와 있는 <토마토 공격대>(1978)라는 영화 아세요? 되게 이상하고 웃긴 영화에요. 그러니까 정말 ‘B무비’이거든요. OTT 이전에 저는 ‘B급영화’로 분류되는 영화들이 있단 건 알았는데 실제로 ‘B급 영화’로 칭해지는 개별 작품들에 어떤 게 있는지는 몰랐어요. 그런데 OTT에 올라온 것들을 보니까 포스터나 썸네일만 봐도 ‘B급 영화’가 이런 걸 가리키는 거구나, 란 게 확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독립 영화란 범주에 한정되는 걸 제가 많이 보게 된 것 같진 않지만, 시청하는 텍스트가 확실히 늘어나기는 했어요. 옛날에 제가 봤던 것들이 한국 영화와 미국 한국 드라마 미국 드라마 조금이었다면 지금은 그래도 왓챠에 있는 건 다 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전에는 안 보던 영국 드라마도 보고요. 영화계의 다양성이 더 풍부해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라도, 사람 한 명이 접하는 콘텐츠 폭은 되게 늘어났을 것 같아요.
임유빈: 그런데 저는 이런 플랫폼이 아예 새로 생긴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없어진 유에포(yoUeFO) 같은 플랫폼도 있었고, 네이버 영화나 분명히 이런 식의 콘텐츠는 계속 있어왔다고 생각해요. 또한, 다양성이 1세계 중심이 아니라 주변화되어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정도라고 생각했을 때 과연 그럴까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것 같아요.
박동수: 그런 의미에서 정말 재밌는 건 넷플릭스가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제작하는 특정 국가의 영화들인 것 같아요. 한때는 태국 영화들이었고 지금은 나이지리아랑 남아프리카 영화들입니다.
임유빈: 오! 넷플릭스는 왜 그런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요?
박동수: 싸고 많이 만들어주니까요. 그리고 내수 시장은 확실히 잡혀 있고요. 나이지리아를 이제 놀리우드라고 부르잖아요. 거기가 이제 지금 할리우드 발리우드 다음으로 영화 많이 만드는 동네인데 거기가 지금 넷플릭스 이후로 뉴 놀리우드라고 불러요. 아예 넷플릭스 때문에 산업 자체가 바뀌어버렸거든요.8) 저는 똑같은 논리가 이제 한국의 영화 시장에도 굉장히 적용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넷플릭스가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심지어 예능까지 시장을 완전히 바꿔버렸잖아요. 영화보다 드라마 쪽이 더 타격이 크지만 저희의 주제는 아니니까 넘어가고 이야기하자면, 결국 몇 달 있으면 OTT에 있으면 뜰 건데 왜 보냐라는 관객이 일단 굉장히 많아졌죠. 여기에는 팬데믹과 그 여파로 급격하게 올라간 영화관 티켓값과 전반적인 물가 상승 등 많은 요인들을 함께 생각해야겠지만요.
김명우: 여러 플랫폼이 부상하는 시점에서 물론 독립영화와의 관계도 당연히 논의가 되어야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독립 영화가 잘 상영되기 위한 구조는 아니잖아요. 이게 말씀주신대로 OTT플랫폼이라는 것이 한국영화 시장에 굉장히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독립영화 또한 같이 말을 해야 하고, 또 그에 맞는 대응은 무엇일까 라는 식의 생각은 해야겠지만, 여전히 OTT라는 플랫폼에서 독립영화의 미래를 말하기란 참 어려운 것 같네요.
박동수: 맞아요. 그런 생각까지 드는 것 같아요. 이 영화가 개봉하고 극장에서 잘 안됐더라도 최종적으로 이게 넷플릭스랑 계약을 맺고 들어가면 어느 정도 이제 손해를 보전할 수 있으니 넷플릭스에 들어가는 것이 최종 목적처럼 여겨지는 거죠. 굳이 넷플릭스가 아니더라도, 작년에 <한산: 용의 출현>(2022)과 <비상선언>(2022)이 개봉한 지 한 달 만에 쿠팡플레이에 올라왔던 것처럼요. OTT에 올라가는 것을 어떤 최종 목적 최종 배급처로 생각하고 만들어지는 극장개봉작이 생겨난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10년 전만 했더라도 VOD와 IPTV는 말 그대로 부가 시장이었는데 지금은 메인 시장이 되어가는 것이죠. 저는 결국 독립 영화들도 이렇게 되는 건 아닐까, 영화제 한 바퀴 돌고 운 좋으면 개봉도 한 다음에 넷플릭스나 웨이브나 왓챠에 들어가는 걸 시작 목표로 삼게 돼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도 좀 드는 것 같아요.
배새롬: 그게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OTT가 없을 때보다 더 나쁜 일일까요? OTT 입점이 최종 목표가 되는 것이요?
김명우: 그 구조가 독립영화와 OTT 플랫폼과의 협력의 느낌이 아니라 독립영화가 거기에 종속되어 버리는 그러한 구조가 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생기는 것 같아요.
박동수: 다음으로 저희가 가져온 질문이 동시대 영화 관람 문화는 과거랑 어떻게 달라졌는가에요. 90년대 신문들이 당시 비디오테크, 시네마테크를 다니던 사람들을 “영화 청년”이라고 부르고 어떤 범주화를 했었어요. 그렇다면 지금의 시네필 혹은 영화광 등은 어떻게 위치 지을 수 있을까요?
배새롬: 요즘 시네필은 약간 멸칭 아닌가요?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을 진짜 욕하는 건 아닌데 멸칭으로서의 '시네필'이라고 불리는 이미지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영화 보는 걸 좋아해도 ‘나 시네필이야’라고 안 하고요. 왜 이렇게 됐을까요? 'GV 빌런'들 때문일까요?
임유빈: 저는 시네필이 멸칭으로 쓰이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요즘에는 또 아닌 분위기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 80~90년대 영화를 좋아했던 영화청년들이 보던 영화를 지금 2020년대의 씨네필이 다시 많이 보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스탠 브래키지의 영화, 마이클 스노우의 영화들도 그렇고요. 그때 당시 가장 많이 보던 실험 영화들 다시 보고 있고요. 오히려 이제 시네필을 멸칭으로 사용하는 단계를 넘어서 시네필을 멸칭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무례한 사람이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배새롬: 사실 시네필을 멸칭으로 쓰는 사람들조차 한 줌인 것 같아요. 영화를 그래도 많이 보는 사람들이 그런 표현을 쓰겠죠? 영화에 아예 관심이 없다면 시네필이라는 말조차 쓰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박동수: 오히려 지금 시네필은 거의 마케팅용이라고 생각해요. 바른손이앤에이가 만드는 MMZ라는 영화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잖아요. 심지어 유료 회원제를 모집하는데, 1,895명밖에 안 받아요. 영화가 1895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그런 식으로 호명되는 것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아요. 모임을 만들기 위해서 혹은 이제 굿즈를 팔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시네필이라고 호명되는 사람들은 조금 넓어졌다는 생각은 듭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시네필로서 정체화하는 사람이 그만큼 있을까 생각하면 저는 별로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배새롬: 시네필이 되려면 정말 많이 봐야 되잖아요. 20~30년 전 시네필이 봐야 하는 영화와 지금의 시네필이 봐야 하는 영화의 편수 차이는 차이가 크지 않을까요? 영화를 보는 경로가 많아지고 그동안 생산된 영화도 더 쌓인 만큼, ‘시네필’이라면 당연히 보았을 것으로 간주되는 영화의 편수가 늘어난 거 같아요.
박동수: 사실 근데 시네필이라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자격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잖아요. 라이센스가 아니니까. 어쨌든 개념일 뿐인데,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영화를 진지하게 보는 사람이 없어지고 있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배새롬: 맞아요, 시네필이 멸칭이 된 것도 그런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에 대한 진지함을 못 참는 세대에게는 시네필이 웃겨 보일 수도 있겠죠. 한편으로는 그런 면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들 자기가 시네필이 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자기를 시네필이라고 안 부르는 건 아닐까요?
박동수: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을 것 같은데, 약간 분리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자기 자신이 시네필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시네필일거예요.
임유빈: 그리고 시네필이 멸칭으로 사용됐다면, 『키노』 나 90년대 시네필 세대들이 스스로를 시네필이라고 호명했기 때문에, 그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영화 문화가 사실 대중과 가까이 있었다고는 할 수 없잖아요. 거기에서 오는 괴리감들이 있었고요. 그래서 시네필을 멸칭으로 분류하는 것은 결국 대중과의 거리 두기를 시도했던 그 세대에 대한 사실에 대한 재해석 혹은 격하의 의미도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박동수: 저도 그 명명에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어요. 문화원 세대를 흔히 한국의 1세대 시네필로 부르잖아요. 그러면 그전에 한국의 시네필은 없었던 건가라는 생각이 좀 드는 거죠. 예를 들어서 문화원에서만 해외의 아트하우스 영화들을 볼 수 있었던 시대였다고 하더라도, 그 밖에도 굉장히 많은 영화들이 있었잖아요. 한국 영화도 많고 수입 영화도 많고, 그것들을 보는 사람들은 그런 시네필이 아니었던 걸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문화원에서 영화 30편 보는 사람과 개봉하는 영화 100편 보는 사람 중에 누가 시네필일까 같은 의문들이요. 결국은 스스로를 시네필이라고 지칭하는 문화원 세대 사람들이 계속 변화하는 영화 운동과 충무로 사이에서 혹은 검열과의 싸움 사이에서 자신만의 비평장을 획득하기 위해 벌인 헤게모니 투쟁 사이에서 나온 명명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다면 더더욱 저희 세대가 그런 윗세대를 보고 시네필로 스스로를 정체화하기에 거부감을 갖는 게 당연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있어요.
김명우: 당시의 문화원에서 봤던 영화라고 하면 프랑스나 독일 문화원에서 보던 상업적인 영화는 아니고 예술적인 영화와 같은 것들인데, 그런 것을 보았다, 혹은 그런 영화를 보러 간다는 식의 특권의식이랄까요? 일반적인 취향이 아니라는? 영화청년 이전에 문학청년이라는 게 있었던 것처럼 그런 식으로 무언가 미학적인 측면에서의 선두에 서서 문화를 향유하는 그런 의식이 시네필에게 있었던 것 같아요.
임유빈: 그런 면에서 저는 고학력 지성인 영화 단체들이 만들어놓은 80~90년대 영화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보기 힘든 것들이 있거든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2023) 같은 것이요. 봉준호의 영화 단체는 아직 한국영화사 내부에서 서술되지 못하니까 이렇게라도 영화 만들기를 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시네필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나를 어떻게 정전화하느냐의 문제랑 계속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박동수: 『한국영화운동사』에 노란문 영화 연구소는 또 없으니까요.
배새롬: 옛날에 문화원에 가지 않고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영화광’이라고 불렀잖아요. 예술 영화나 이런 게 아니라 이소룡 영화나 홍콩 영화, 동시 상영 영화들을 많이 보던 사람들은 ‘예술영화 보는 시네필’과 다르게 범주화된 거 같아요.
김명우: 그런 것에 비해 시네필은 좀 더 아카데믹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좀 더 영화문법에 관심이 있다든지, 이론적인 접근이라든지요.
박동수: 시네필들, 그러니까 영화를 많이 보는 영화광들에 한정 지어서 얘기를 한다면, 어쨌든 극장에서 영화 보기 좋아하고 영화제와 기획전을 매진시키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그 밖의 영화를 주로 보는, 영화의 어떤 저관여층들을 떠올려 봤을 때 이 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변했죠.
김명우: 변했다고 하는 게 일반 극장의 관객들이요?
임유빈: 식민시기 영화 대중 연구를 보면, 지금처럼 스스로를 검열하는 영화관이 아니라 어떤 만남의 장과 같은 그런 단관 문화 이런 것들에 대해서 계속 얘기를 하잖아요. 대안 공간 같은 지점에서요. 그런데 사실 지금의 영화 관객들은 그거를 못 견디는 거잖아요. 검열하고 스스로를 계속 통제해야 하는 영화 장소에 대한, 그런 지점에서 사실 영화 관람 방식에 대한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김명우: 멀티플렉스 관객들의 반응과 영화제나 예술영화관 같은 곳에서의 관객들의 반응이 약간 다른 것 같기도 해요. 물론 여러 가지 상황도 있을 것이고, 관객의 취향이라든지 그런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이겠지만요. 제가 어렸을 때는 주로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봤었는데, 그때를 기억해 보면 항상 관객이 많은 그런 극장의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코미디 영화를 보면 같은 포인트에 같이 웃는 그런 모습이라든지, 근데 예술영화관이나 이런 곳에서는 혼자 영화를 보러오는 사람도 많고, 중간에 나가는 사람이라든지, 조금 더 자유롭게 영화를 본다는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과거 경험했던 멀티플렉스에서의 영화 관람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는 인상이 있었던 것 같네요.
임유빈: 맞아요. 어쨌든 영화를 잘 만들면 자동적으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잖아요. 신체가 반응을 하니까요. 그런데 이제 갑자기 절제된 영화 관람을 계속 강조하는 것은 사실 그런 영화를 잘 못 만들어서가 아닐까요..
저는 한국 영화와 한국영화계가 자애로운 관객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가 계속 이해를 하려고 하잖아요. 극장이 이 영화를 왜 자꾸 틀어 혹은 영화를 왜 이렇게밖에 못 만들어라는 게 산업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자꾸 이해를 하려고 하잖아요. 돈이 별로 없어서 그렇대 혹은 어떤 경기가 안 좋대 이런 문제로 이해를 하려고 하는데 사실 잘 만든 영화라고 한다면 어쨌든 줄어가는 한국 영화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 관객들의 관용을 요구하는 한국 영화계가 전반적으로 반성해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박동수: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아까도 OTT의 다양성 얘기를 하긴 했지만 실제로 보진 않아도 굉장히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심어주잖아요. 내가 표를 끊고 시간이 맞는 것만 볼 수 있다 라는 게 영화관의 태도라면, OTT는 모든 것이 열려 있으니까 너 마음대로 하라고 하니까요. 그렇게 이미 관객이 가질 수 있는 자유도는 훨씬 높아졌는데 영화관과 그를 포함한 한국 영화 산업 자체가 관객한테 바라는 것은 굉장히 반대되어 있는 것 같아요. 더군다나 영화 자체의 퀄리티가 따라주지 못하다 보니 그런 반응이 나오고요. 그리고 한국 영화의 관객은 거의 모든 경우에서 독립 영화의 관객과 많이 겹치다 보니 오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독립영화에도 비슷한 기준을 들이대게 되는?
배새롬: 한국 영화 관객이 독립영화 관객과 겹치나요?
임유빈: 이도훈 평론가의 『이방인들의 영화: 한국 독립영화가 세상과 마주하는 방식』(갈무리, 2023)이라는 책을 보면 2010년대 이후에 한국 영화의 베스트를 꼽으면 대부분 사람들이 독립 영화를 후보에 올리는 것 보면서 사실상 한국 영화의 대부분은 독립 영화에 속하지 않느냐는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한공주>(2013), <벌새>(2018), <파수꾼>(2011) 같은 영화들이요.
배새롬: 그건 또 흥행이랑은 다르잖아요. 최고의 한국 영화 같은 걸 뽑는 사람들이 ‘천만 영화’의 관객 일반을 대표할 수 있는 일반 관객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한국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들이 독립 영화를 많이 본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박동수: 반대로 독립 영화의 관객이 한국 영화의 일반관객일 거라는 얘기예요. 예를 들어서 <메기>(2019)나 <벌새>(2018)를 좋아하는 사람이 <밀수>(2023)나 <서울의 봄>도 보겠죠. 다만 어쨌든 영화 커뮤니티들도 상업영화가 개봉했을 때 그 영화 얘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요.
임유빈: 맞아요, 그리고 시사회 티켓도 다 거기에서 풀리잖아요. 거기가 주력 타깃이고요.
박동수: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과거에 영화 청년으로 불렸던 90년대 시네필과 지금의 영화광, 영화 마니아들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얘기했을 때, 영화를 볼 수 있는 플랫폼과 어떤 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의 가짓수 자체만 놓고 본다면 더 많은 일단 자유도가 생겼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극장개봉작이 아닌 것 혹은 독립 영화가 아닌 것에 좀 더 우선순위가 가게 되었다 정도로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가 계속 영화 운동 시대 얘기를 했지만 그때는 영화 공동체가 와장창 쏟아져 나왔던 때잖아요. 운동과 관계없는 단순히 영화 애호가들의 공동체도 있었고요. 예를 들어서 90년대에 시네마테크 운동 같은 걸 했다면 충무로로 간다, 영화를 만든다, 제작한다, 배우를 한다, 혹은 글을 쓴다, 활동가가 된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해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있지만 이름을 남기지 않은 무수한 사람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그 사람들을 순수한 의미에서 관객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그러한 관객 공동체 근데 혹은 영화를 제작하고 비평하는 것을 포함한 공동체일지라도 지금의 상황에서 가능할지 궁금해요. 그리고 그게 어떤 식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를 얘기해 보고 싶어요. 왜냐하면 지금 독립영화 쪽에는 그게 부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먼저 얘기 이어가자면, 물론 지역에서 이제 지역 독립영화협회라든가 독립예술영화관, 혹은 그곳과 긴밀하게 연관을 갖고 활동하는 여러 지역 영화 단체, 청년단체가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대전의 INK라든가 그런 곳들이 있죠. 저는 그래서 최근 2~3년이 기점이라는 생각이 들긴 들어요. 90년대에 지역별로 시네클럽이 생겼던 것처럼, 지금 다시 조금씩 생겨나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뭔가 과거의 역사를 반복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단순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반복을 넘어서서 다른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지켜봐야 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다만 이건 오프라인에서의 영화 공동체들에 대한 얘기이고 온라인으로 옮겨간다라고 했을 때, 저는 정말 머리가 복잡해지네요. 다만 한 가지 얘기하고 싶은 건, 제가 이번에 기획전에서 상영하고 싶다고 한 영화가 이응일 감독의 <불청객>(2010)이잖아요. 영화의 첫 장면은 “이 영화를 디시인사이드에 바친다”라는 자막입니다. 이 감독은 서울대 얄라성 출신이면서 동시에 DC 영화 갤러리 출신이기 때문이고, 심지어 영화가 개봉했을 때도 '형이 영화 찍었다'라고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죠.9) 영화를 보면 2000년대에 많이 있었던 잉여인간 담론, 나는 사회에 잉여고 쓰레기고 아무것도 할 게 없고 백수라는 패배의식과 허무주의에서 출발하는 영화예요. 다시 말해서 오프라인 영화 공동체의 문화라기보다는 온라인에 존재하는 영화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한국의 온라인 커뮤니티의 문화들을 그 영화 안에 접합시킨 사례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그런 사례가 등장한 이후에, 본격적으로 익스트림 무비가 커뮤니티화되고 DC 영화갤러리가 다른 여러 갤러리들로 분화하는 과정들을 거치면서 영화 커뮤니티들의 파편화가 일어났어요. 동시에 커뮤니티들이 독립 영화와 충무로의 마케팅 대상이 되면서 커뮤니티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돼버리는 양쪽의 상황이 같이 와서 결국 이쪽도 기능을 못하게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트위터나 왓챠피디아, 혹은 DC 마이너 갤러리 등에서 굉장히 파편화된 형태로 각자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몇몇 블로거들 등이 많이 남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제가 지난 10몇 년 동안 온라인 영화 커뮤니티를 봐오면서 경험적으로 하는 말이고 뚜렷하게 제시할만한 증거는 없지만 그렇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온라인 영화 커뮤니티에 한정해서는요. 그래서 지금 상태에서 과연 MMZ 같은 기획은 가능할 것인가 물어본다면 망할 것이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임유빈: 저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온라인 커뮤니티가 파편화된 것에는 동의하고, 그에 반해 영화 마케팅이라든지 아니면 시네마테크가 그 파편화된 관객들의 영향을 받고 있음은 자명하다는 생각은 드는 것 같아요. 그들에게 핫한 인물 소위 영화 좀 안다고 그들이 인정하는 인물들, 많이 회자되는 영화들이 사실상 영화제에서 대부분 매진 되기는 하고요.
오프라인 영화 커뮤니티라고 했을 경우, 저도 시네클럽 소행성과 함께 공동체 상영회을 기획해 봤지만, 지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자비로밖에 진행을 하지 못했어요. 작은 상영회라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지속되기에는 현실적으로 진짜 돈이 많이 들어요. 모든 것을 적법하게 진행하려면 자본의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죠. 사실상 관객 후원도 거의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되게 어렵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결국 소행성도 잠정적으로 활동을 멈춘 상태인 것 같아요. 그곳도 한 3년 정도 그래도 매주 상영회를 했었는데요. 지원을 받아 운영하던 작은 영화제의 예산도 삭감되고, 예산 바깥에 있던 마이너한 시네클럽 역시도 거의 운영되지 않고 있는데요.
얘기를 들어보면서 든 생각은 영화 커뮤니티가 영화제 관객으로서는 기능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를테면, 공통의 관심사로 모이게 되는 영화제들이요. 서울동물영화제라든지 여성영화제라든지, 영화제가 커뮤니티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국제영화제들은 사실상 그런 기능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물론 마켓은 또 다른 이야기겠죠. 그리고 영화제는 우선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거기서 커뮤니티가 생겨난다고 해도 사실상 그것들이 너무 자본이 많이 드는 커뮤니티로서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 애호가라는 측면에서의 국제영화제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고요, 동물권, 페미니즘, 배리어프리와 같은 측면에서는 커뮤니티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명우: 말씀해 주신 온라인/오프라인 집단 같은 경우에 과거에는 이제 영화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는 형태의 하나의 담론으로 되게 똘똘 뭉쳐진 그런 성격을 보였는데, 사실 지금은 그런 식의 단일한 성격을 지니거나 규명하기 어려운 상태로 커뮤니티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영화 커뮤니티에 대한 논의가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그렇다면 모극장 같은 경우도 커뮤니티가 될 수 있을까요?
박동수: 모극장 같은 경우에는 커뮤니티 시네마들이 활동을 할 수 있게 지원해 주는 단체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공동체 상영할 때 상영 가능한 영화 카탈로그를 보유하고 있어요. 약간 중개업에 가까운 느낌이죠. 혹은 이제 커뮤니티 시네마, 공동체 상영회 혹은 시네클럽 등을 조직할 때 활동가 교육을 한다거나, 그런 활동들을 많이 하죠. 예를 들어 모극장이 가지고 있는 카테고리 안에 없는 영화를 틀고 싶다, 그러면 배급사를 어떻게 컨택을 하고 돈을 얼마를 주고 해야 되는가, 그런 것들을 교육하는 거죠. 모극장뿐만 아니라 인디그라운드나 등에서도 그런 사업들을 진행했었고, 아주 작게는 지역 문화재단 같은 데서도 가끔 그런 사업을 했었어요. 이 사업들을 통해 전국 곳곳에 커뮤니티 시네마가 분명히 존재하긴 해요. 다만 이렇게 말하면 좀 죄송하기도 하지만, 가까스로 연명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최근에 제일 흥미로웠던 국내 시네클럽 사례는 동국대학교 '차차 시네마테크'입니다. 대학교라는 틀이 있고 학교 안에서는 기본적으로 영화 상영관 대관료가 없잖아요. 그리고 학교가 자연스럽게 사람을 모으는 부분도 있고 학교이기 때문에 접근성 자체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것도 있고요. 그런 다양한 여건들 때문에 차차 시네마테크가 굉장히 지금 호응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험적인 영화들, 아까 이야기 나왔던 스탠 브래키지 영화를 직접 필름으로 튼다던가, 거기서 재직중인 핍 초도로프 교수가 필름들을 소장하고 있기도 하고요. 정재훈 감독의 단편 영화 상영처럼 독립 영화들과의 어떤 교류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할 수 있었던 토대로서의 학교가 굉장히 긍정적으로 기능한 사례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학교에서 거기를 지원해 준 건 아니지만, 학교 안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활용할 수 있었던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 장소가 없는 경우가 많고, 돈이 없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3년이든 5년이든 활동하다가 없어지는 곳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이 부분이 하나의 어떤 이념이나 사상을 가지고 모였던 과거와는 다른 지점인 것 같아요. 심지어 과거에도 결국 장소 기반으로 모였잖아요. 대학교가 됐든 문화학교 서울이 됐든 말이죠. 물론 어느 정도 탄압을 받았다고 해도요.
임유빈: 저는 궁금한 게 있는데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하시면서 그러니까 파편화됐다고 하지만 영화제나 시네마테크가 반응은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반응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반응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나요?
박동수: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이 실제로는 10명밖에 안 되는 한 줌일 수도, 굉장히 과대표된 거일 수도 있지만 결국 표출되는 목소리가 그거밖에 없으니까요.
배새롬: 제가 가끔 듀나 커뮤니티를 봤는데요. 그 커뮤니티는 듀나를 아는 사람들에겐 굉장히 존재감이 컸던 것 같은데 마케팅 측면에서는 고려가 안 되는 집단인가 봐요.
박동수: 지금은 사실상 죽은 커뮤니티나 다름 없는 … 듀나가 트위터로 활동지를 옮겨가고 나서, 물론 듀나가 계속 글을 쓰긴 하지만, 상주하는 유저 자체가 많이 줄었죠. 심지어 메인 게시판에 글이 하루에 10개도 안 올라오네요.
배새롬: 진짜 게토가 됐군요.
박동수: 마무리로 저희의 기획이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좋겠는지 이야가하면서 정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배새롬: 비평가라는 타이틀이 별거 아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쟤네 뭔데 저런 거 하지? 영화비평이라더니 별거 아니구나', 이렇게요.
박동수: 저희가 뭔가 준비를 이것저것 하긴 했지만, 사실 마구잡이 신변잡기식으로 떠드는 것도 많았잖아요. 이런 얘기를 하는 마구잡이로 해주는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명우: 이번 비평가 지원 사업을 통해 기획에 참여하면서 이렇게 대담을 했는데, 앞으로도 한국 독립영화에 대한 여러 다양한 생각들을 여러 사람들과 더 많이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박동수: 이 기획전이 이렇게 저희와 같이 떠들 수 있는 기획전이 됐으면 좋겠다 정도의 바람이 있습니다.
임유빈: 저희가 나눈 산만한 질문은 영화를 좋아하는 모두와 이야기해보고 싶은 지점이기도 하고요. 저는 이번 기획전을 준비하면서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던 독립영화에 대한 생각이 좀 많이 바뀌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분들에게도 이 기획전이 그렇게 다가갔으면 좋겠고 그렇습니다.
.배새롬: 한국 영화계에서 운동이라고 할 만한 가장 마지막은 스크린 쿼터 사수였던 거 같아요. 스크린쿼터제도 나중에는 많이 축소됐지만, 상대적으로 이 운동이 잘 됐고 그게 한국 영화의 시장 크기를 많이 키웠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더 이상 영화계 내부에서 운동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많지 않아 보여요. 적어도 상업영화계에서는요.
임유빈: 근데 지금 최근에 이제 윤석열 정부 들어서면서, 영화제의 예산 삭감이나 원주 아카데미 극장 이런 사태들이 되돌아왔고, 다시 이제 안타깝게도 운동하는 힘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새롬: 그런데 원주 아카데미는 왜 없어진 거예요?
박동수: 간단히 설명드리면 그전까지 3선 민주당 시장이었는데 그 사람은 원주 아카데미 극장이 문화재적으로도 가치가 있으니 기존 극장 건물을 유지한 채 복합 문화 공간으로 쓰려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2022년 지방선거에서 시장이 다른 당으로 바뀌면서 일종의 전임자 지우기에 들어간 거죠.5) 또, 최근에 공동체 상영이라든가 그런 상영 활동가가 받을 수 있는 지원 사업도 예산 삭감 중에 하나로 다 날아가 버렸죠. 다른 이야기지만 오늘 강릉시영상미디어센터도 내년도 예산이 전액 삼각됐다고 하더라고요.6)
배새롬: 전액 삭감이라는 헤드라인 요즘에는 하루에 한 번은 보는 것 같아요.
임유빈: 성하훈 기자님 『한국영화운동사』(푸른사상, 2023) 1부 첫 번째 줄을 보면 영화계는 “진보와 보수가 9대 1”이라고 기술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런데 사실 그것도 지금은 한 때 이야기라고 느껴지거든요. 저는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 발언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책임에 대해서.
배새롬: 지금 전주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 정준호인 것도요.
박동수: 저는 그때 진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진보적인가를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 선택의 구성: 감상 가능한 영화들이 감상 가능해지는 경로
박동수: 이제 저희는 극장부터 OTT에 이르는 영화 플랫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시네마테크들에서 반복되는 인기 있는 거장의 회고전, 특별전이 너무 잦은 빈도로 한정된 작품들만 다뤄지지 않고 있는가라는 얘기가 있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오큘로』 5호에 이도훈 평론가님이 “문지기의 임무: 동시대 한국의 시네마테크와 영화제 프로그래밍”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신 게 있거든요. 이 글이 떠올라서 다시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새롬: 제가 그 질문을 썼을 때는 그걸 몰랐어요. 기획전이 그렇게 구성되는 이유 중 돈과 관련된 이유가 가장 크단 거요. 이 돈과 관련된 이유가 결국은 뭉텅이로 사와서 한정된 기간에 무한으로 틀 수 있다, 그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모르고 기획전을 봤을 때는 되게 무난하고 한국 사람들이 무리 없이 좋아할 만한 작가들을 많이 틀어준다는 인상이었어요. 너무 난해하거나, 너무 정치적으로 어떤 메시지가 강하지 않은 감독들 있잖아요. 에릭 로메르나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들이요.
임유빈: 한국의 시네마테크라고 하면, 한국영상자료원이나 서울아트시네마, 부산 영화의 전당 프로그램이 익숙한데요. 어쨌든 지금 시네마테크의 수장도 그렇고, 내부의 문제가 많이 있잖아요. 문제를 잘 봉합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제나 극장의 큐레이션도 어떤 새로운 영화사 서술이나 어떤 비평의 활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이 거의 멈춰져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세계3대영화제라고 하는 1세계의 영화제에서 한 프로그램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국내의 어떤 영화제에 위상을 세우는 것도 아니고요. 가져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 영화가 무능력한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한국 영화 관객에게 새로운 영화란 무엇일까, 아트시네마나 영화제에서 만나야 하는 영화는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박동수: 사실 한국에서 시네마테크가 시작된 것도 이제 80년대 말쯤이잖아요. 그때 '영화 공간 1895', '문화학교 서울' 이런 거 생기고, 광주의 조대영 선생님이 만드신 굿펠라스라든가 아니면 부산의 '시네마테크 1/24'이라든가 대전이나 대구에도 그런 것들이 있었고요. 그런 실천들이 모여서 90년대에 이제 한국 시네마테크 협의회라는 게 생기고, 그럼으로써 문화학교 서울을 이어받아서 서울아트시네마가 생기고 한 역사들이 있죠. 결국 한국에서 시네마테크는, 물론 문화원 같은 것들을 빼놓을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민간 단체의 성격이 좀 더 강하게 있었던 것 같아요. 중요한 건 그때 있었던 사람들이 아직도 그것들의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다는 것 같아요. 물론 그분들이 능력이 없고 새로운 것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얘기는 아닌데, 그때의 어떤 레퍼토리들을 여전히 하고 있다는 인상을 계속 받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들, 이를테면 상영본 수급의 문제, 예산의 문제 같은 것들이 있겠지만요.
배새롬: 저는 사실 이렇게 기획전을 반복하는 게 저한테 나쁘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못 본 영화가 되게 많고 이왕이면 극장에서 보면 좋으니까요. 근데 이 한정된 작가들 중에서도 '왜 다른 감독보다 이 감독의 영화를 자주 보여주지?' 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임유빈: 관객 점유율도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을 테고, 저를 포함한 한국 영화 관객들이 제가 생각할 때는 너무 아는 영화만 계속 보는 경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아예 새로운 영화, 처음 보는 영화는 사실 거의 관객들이 안 보고, 유명한 누군가 언급을 해주면, 따라서 보긴 하지만, 새로운 영화 다 하긴 했었어요. 뒤늦게 찾아보면 영자원에서도 했고, 아트시네마에서도 했고, 인디 스페이스에서도 했고, 근데 그걸 너무 뒤늦게 알아버려요. 아마 많은 사람이 들지 않아서 그 영화관이나 영화제도 이제는 틀지 않게 됐을 수도 있겠죠?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다면 현재 예술영화관 독립영화 예술관에 가는 관객이 많이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저는 요즘 많이 가요. 영화 티켓값이 많이 올랐는데, 예술영화관은 그렇지 않으니까 확실히 많이 가요. 그래서 코로나 끝나고는 이제 무조건 영화제나 이런 데서 영화를 진짜 열심히 보고 있는데 값이 싸서 부담이 없어졌어요.
김명우: 맞아요. 새롬 님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저도 반복해서 기획전 자주 틀면 좋긴 좋아요. 근데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프로그래밍에 대한 어떤 발굴이라든지 이런 것에 대한 시도는 별로 되지 않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전에 다른 곳에서 얘기를 나눈 것 중 하나가 사실상 한국 영화를 블루레이나 4K로 복원할 때의 영화들이 이미 유명한 영화들이란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새로 발굴하는 개념이 아니라 뭔가 이미 정전화된 그러한 유명한 영화들을 혹은 유명감독들을 자꾸만 이렇게 기획전으로 하려는 경향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책방 노마만리라고 천안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인데, 그곳에서 제가 잠깐 일을 도와드리며 상영회 같은 것을 하면 보통 안 알려진, 많이 못 본 영화를 상영하면 많이 오겠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예를 들어 박찬욱 영화는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오는 식이에요. 이미 유명하고, 다 봤을 법한 영화들을 상영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약간 새로운 시도가 더 어려워지는 그런 지점도 생기는 것 같아요.
박동수: 그래서 저는 자체 프로그래밍보다 그 바깥의 프로그래밍들이 있잖아요. 누구를 불러와서 이 영화를 얘기하게 할 것인가 같은 거를 생각해 봤을 때 거기서 오히려 신선함을 찾을 수 있고요. 그런 시도가 최근의 영상자료원에서는 그래도 많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다른 곳들에서는 뭔가 반복된다라는 인상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김명우: 그런 기획이 신선하기도 하고, 재밌는 논의들이 계속 나올 수는 있을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새로운 영화 자체를 보여준다는 인상보다도 이 영화를 통해 혹은 영화와 관련된 누구를 끌고 올 수 있는가. 예를 들어서 배우라든지 아니면 여기서 뭔가 덧붙일 수 있는 평론가라든지 거기에 걸맞는, 그런 주변부를 고려해서 프로그래밍을 한다는 느낌도 드는 것 같아요.
박동수: 그래서 저는 올해 재미있었던 건 한예종에서 진행된 모리타 요시미츠의 자주 영화 상영이 거의 꽉 찼던 게 되게 신기했어요. 어떻게 보면 마케팅과도 같이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런 영화들을 발굴해서 틀어놓으면 볼 사람들은 있는 거죠. 적어도 한 회차를 채울 정도의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다만 어떤 접근성의 문제, 예를 들어서 영자원은 너무 멀리 있다라든가 나는 서울아트시네마를 갈 수가 없다 라든가 하는 문제들이 있기는 하겠죠. 그래서 뭔가 새로운 걸 발굴해도 그것을 내가 볼 수 있는 곳에서 트느냐의 문제도 많이 들어가 있고 그렇다 보니 오히려 때 되면 보수적인 프로그래밍이 돌아오고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네요.
임유빈: 맞아요. 저도 그 회고전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회고전뿐만 아니라 올해 실험영화제에도 사람이 많이 모이게 되고, 관객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는 오즈 야스지로나 나루세 미키오도 좋지만 모두가 새로운 영화, 큐레이션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다시금 리부트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박동수: 이번 실험영화제에서 마이클 스노우의 <중앙지역>(1971)을 틀었잖아요. 3시간 동안 계속 카메라만 빙글빙글 돌아가는 작품이 매진된 게 제일 신기했어요.
임유빈: 맞아요. 그것도 다 매진되고, 아핏차퐁도 매진되고, 옵/신 페스티벌 같은 곳도 표가 되게 구하기 어렵고요.
박동수: 뭔가 두 가지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새로운 영화들을 보려는 관객층이 확실히 어느 정도 생겼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도 결국 빅네임만 본다는 인상이 있어요. 그리고 그 사이에서 한국영화는 보지 않는다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그나마 김기영 같은 경우야 인기 있다고 하지만, 임권택이라든가, 이만희라든가 이 정도의 큰 이름들도 영상자료원에서 회고전 같은 걸 할 때는 그 사람들의 가장 대표작이 아닌 이상 그렇게 매진이 되거나 사람들이 엄청 꽉 찬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배새롬: 꽉 차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나요?
임유빈: 그런데 모리타 요시미츠 자주영화 상영 때는 꽉 찼었잖아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모리타 요시미츠 기획전을 시작하기 전날 전야제로 했던 상영인데, 결국 이것도 외국 감독이라는 것이죠.
과거의 영화를 보는 방법: 유튜브와 저작권 보호 사이
박동수: 모리타 요시미츠처럼 한국에서 80~90년대에 활동했던 감독의 회고전이나 아니면 그 사람이 학생 때 만들었던 것을 모아서 튼다라고 했을 때 몇 명이 나올까라는 궁금증 같은 게 있어요.
임유빈: 한국 감독 중 누구의 작품을 보고 싶은가?
배새롬: 한국 영화 중 그런 기획전을 연다면 배우 회고전으로도 좋은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박동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하긴 하거든요. 올해는 최민식이었어요. <쉬리>(1996)도 틀고. 그래서 <쉬리>를 처음 봤어요.
배새롬: <쉬리>를 볼 수 있었군요. 삼성이 영상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사라져서 판권자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들었어요. 감독인 강제규도 <쉬리>를 틀 수 없다고요.
박동수: 그래서 90년대 2000년대 단절 얘기할 때 얘기를 했어야 되는데, 그런 상황 때문에 못 보는 영화도 많아요.
임유빈: 저작권의 문제로 보지 못하는 영화, 그리고 결국 플랫폼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결국 그런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플랫폼인가 하는 그런 문제요.
배새롬: 요즘 유튜브로 그러한 보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가시화된 건 있는 것 같아요. 한국 고전 영화도 그렇고, 해적질을 옹호하면서 보기 힘든 옛날 영화를 업로드하는 계정이 꽤 많잖아요. 한국도 있고, 외국도 있고요. 이런 계정을 둘러보다가 유튜브의 한 외국 영화 계정에 올라온 소비에트 시절 영화 뷰 수가 천만인 걸 보고 진짜 깜짝 놀랐어요. 이런 걸 보면 카피라이트에 대해서 조금씩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더 보이는 거 같아요.
박동수: 그렇죠. 사실 시네마테크에서 너무 똑같은 것만 트니까 오히려 그런 쪽에 힘이 실리는 부분도 있긴 하잖아요.
김명우: 80~90년대 영화청년들이 비디오를 복사해서 보거나 하는, 거의 불법 상영이라고 볼 수 있는 상영으로 뭔가 새로운 영화에 대한 갈망을 풀어낸 것처럼요. 그렇게 정식으로 볼 수 없는 비디오를 보면서 그때 그들이 느낀 건 새로운 형식의 어떤 새로운 영화들이 있구나 라는 어떤 인사이트를 얻었을 것 같아요. 현재 지금의 불법 유통된 영화들에 대한 상황도 복잡한 것 같아요.
박동수: 다양한 레이어가 많이 겹쳐 있는 것 같아요. 그때는 영화를 보는 거든, 상영하는 거든 불법이었던 때이기도 하잖아요.
배새롬: 세운상가 생각나요. 빽판이라고 하는 것이 유통되던 굉장한 메카였잖아요. 포르노, 일본 망가, 온갖 것이 돌아다니던 장소요. 그런데, 이런 유통이 인터넷으로 한때 옮겨갔다가 저작권 문제가 화두에 오르면서 그런 걸 보는 건 부정적인 일이란 생각이 다수의 지지를 얻었다가, 또 요즘은 약간 달라진 것 같아요.
박동수: 왓챠 같은 경우에는 자본이 많은 곳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종류의 판권으로 영화를 가져오는 것 같더라고요. 부가판권 안에도 물리매체 판권이 있고 방영권이 있고. 스트리밍 쪽은 방영권으로 빠져가지고 덤핑으로 사왔던, 종종 DVD 샵 가면 오즈 야스지로나 히치콕 같은 감독의 거의 전작을 출시하던 그 판권 그 판본으로 그대로 올리는 경우도 많아요. 왓챠가 생기기 전에는 네이버 시리즈온 등에 다 있던 판본이긴 해요. 그래서 자막이랑 화질이 안좋죠. 심지어 몇몇 홍콩 영화는 TV 방영판이라 담배와 칼이 모자이크되어 있고요. 한국 영화에 좀 좁혀서 얘기를 하면 오히려 더 심하다고 해야 될까요? 아까 <쉬리> 얘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판권자가 소멸해 버린 경우도 많고, 반대로 굉장히 많은 단편 영화들이 왓챠나 웨이브 등으로 배급이 많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사실 자체를 좀 모르는 경우도 많고요.
OTT와 독립영화
배새롬: 왓챠에 단편 영화가 진짜 많은데 누가 볼지 되게 궁금해요.
박동수: OTT 플랫폼이 이것저것 있고 거기서 영화든 드라마든 예능이든 많이 만들고 있는데, 거기서 과연 독립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혹은 독립영화가 OTT 안에서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얘기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사실 OTT 이전의 영화관에서도 그랬고요. 물론 인디스페이스 같은 독립영화전용관도 생기고 CGV 아트하우스, 롯데시네마 아르떼 등도 생기고 하면서 어느 정도 설 자리가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 영화로 분류되는 해외 영화들에 많이 묻히게 되는 상황이잖아요. 저는 이 상황이 OTT로 넘어갔을 때는 완전히 비가시화된다는 점에서 좀 더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배새롬: 독립영화의 범주에 포함되는 작품은 아니어도 제작 단계에서 자본이 부족해서 좌초됐다가, 넷플릭스 같은 데 돈을 투자받아서 제작이 되고 배급이 된 경우도 있지 않아요?
박동수: 한국의 사례만 얘기를 하자면, 그렇게 만들어진 충무로 상업영화들은 대부분 이미 완성된 영화들이고 코로나19 팬데믹 때 많이 넘어갔죠. 개봉을 못하고 극장 관객이 없고, 그리고 넷플릭스는 딱 이미 들어간 제작비를 보존할 수 있는 돈 정도를 주고 작품을 사오는 거죠.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오리지널 콘텐츠라고는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걸 사오는 거고, <승리호>(2021)나 <사냥의 시간>(2020) 같은 사례가 대표적일 텐데 만드는 입장에서는 영화관에 개봉해 봤자 지금 사람도 별로 안 오는데 망하지 않을까, 그러면 이제 본전치기라도 하자 생각하고 넷플릭스에 팔아버리는 거죠.
배새롬: 한국 건 아니어도 <로마>(2018)나 <아이리시맨>(2019) 같은 것도 넷플릭스가 아니었으면 못 만들어질 영화들 아니었을까요.
박동수: 그게 굉장히 한정적인 사례인 게 대부분 넷플릭스 미국에만 해당하는 얘기예요.
임유빈: 저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게, 현재 한국의 영화 산업이나 콘텐츠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경계지대라고들 다들 많이 얘기를 하잖아요. 그러니까 콘텐츠의 질이나 이런 거랑 상관없이 1세계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시험하는 그런 것이라고 했을 때, 한국의 예술 영화라고 하는 것에 자본을 지원해줄 것인가에 대해서도 사실 알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너무 빨리 개봉하잖아요. <지옥만세>(2022)도 극장 개봉하고 이제 3개월 만에 거의 넷플릭스 개봉을 했는데요. 물론 계약 절차에서 연결되면 투자, 배급, 제작비 회수 면에서도 더 유리할테고, 합의하고 계약하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되면 관객 입장에서는 극장에서 볼 필요가 없어지게 돼요.7)
박동수: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이제 OTT에 공개가 됐을 때 이 영화들이 OTT 안에서 사람들이 많이 보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올해인가 작년인가 넷플릭스 탑텐에 되게 오래 들어 있던 저예산 에로 영화 <등산의 목적>(2015)이라는 영화가 하나 있어요. 이런 걸 볼 때, 넷플릭스가 완전히 과거에 IPTV의 자리를 꿰찼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따지면 사실 독립 영화 중에서도 좀 자극적이거나 어떻게 보면 포스터만 봤을 때 좀 저거 좀 자극적이고 재미있어 보이겠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 있어요. 과거에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2006) 같은 게 은근히 OCN에서 심야에 많이 틀고 했던 것처럼요. 근데 제가 볼 때마다 그 영화가 굉장히 많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지옥만세>나 <다섯 번째 흉추>, <괴인> 이런 것들이 넷플릭스나 웨이브에 올라갔을 때 그렇게 될 수 있는가라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물론 <박화영>(2017) 같은 예외 사례가 있죠. 진짜 소수의 말 그대로 상품성 있는 독립 영화만 결국 살아남을 수 있는 게 OTT고 그렇지 않은 영화들이 OTT 메인 화면, 소위 사용자 추천 알고리즘이라고 하는 것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많은 독립 영화가 OTT에 올라와 있는데 그게 올라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잖아요.
김명우: 독립영화가 OTT 안에서 살아남는 것과 독립영화의 본질이랄까 하는 문제가 같이 가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문제 같기도 해요. 동수 님이 말씀해 주셨듯이 지금 독립예술관에서도 사실은 그 영화를 볼까 말까한 영화들이 OTT에 올라와 있을 때 더 개인화된 선택의 여지가 많은 상황에서 굳이 독립영화를 선택할까? 선택하는 계기는 뭘까? 라는 생각은 들어요. 결국에는 넷플릭스나 이런 것들이 알고리즘에 의해서 작동이 되고 그러는데 이게 개인의 취향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것은 그룹의 취향이 작동 되는 거잖아요. 결국 과연 그 그룹의 취향이 얼마나 독립 영화에 대한 관심과 지분을 갖고 있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박동수: 사용자 추천 알고리즘이 내가 본 영화들, 드라마들에 맞춰서 추천을 해준다고는 하지만, 말씀 주신 대로 빅데이터를 통해서 돌아가기 때문에 다른 사용자들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알고리즘을 무시하고 추천하는 영화들도 많잖아요. 이를테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뭐가 나왔다 웨이브 오리지널, 티빙 오리지널로 뭐가 나왔다, <나는 솔로>(2021~)는 아무나 보지 않냐 이런 느낌으로 OTT 메인 화면에 깔리는 거죠. 그래서 결국 그 안에서 독립 영화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항상 드는 것 같아요.
임유빈: 맞아요. 그리고 지금 <지옥만세>는 탑텐에 계속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자꾸 영화를 보는 관객 풀이 너무 작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저번에 한 소셜미디어에서 어떤 유저가 <아사코>(2018)를 추천했는데 급상승하면서 왓챠 메인에 뜨더라고요. 사실 플랫폼마다 성향이 다르고, 왓챠의 경우는 영화 위주라면 넷플릭스는 과거 주말 명화극장같은 텔레비전 극장에 익숙했던 중장년세대부터 숏폼에 익숙한 아주 어린 세대까지 아우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한 지점에서 독립영화가 어떻게 유통될 것이냐의 문제가 어려워지네요.
OTT와 다양성의 관계
배새롬: 그런데 독립영화가 OTT 안에서 오히려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과 별개로, 개인이 접하는 영상 텍스트의 다양성을 OTT가 확대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임유빈: 저는 아니에요. 제 경우에는 보는 시간은 확 늘었는데 보는 것의 질은 확실히 저하됐어요. 이를테면, 결국 서브컬처가 지금 메인스트림으로 계속 올라오면서 생기는 문제들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서브컬처가 질적으로 낮다는 건 아니지만, 과거 주말 명화극장이나, OCN 채널이 심야에 <등산의 목적> 같은 성인 에로 영화를 틀어줬다고 해도, 균형적으로 좋다고 말해지는 영화들도 함께 상영됐었거든요. 그런데 OTT는 아니잖아요. 무엇을 생산하고 무엇을 봐야 하는지에 대한 선택권이 더 좁아졌다고 생각해요.
박동수: 저는 지금 넷플릭스에 독립 영화를 검색했더니 독립 영화들이 쭉 나오면서 <강철 부대>(2021~)가 끼어 있는 걸 보고 약간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넷플릭스 자체적으로 마련한 독립 영화 관련 콘텐츠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사실 한국 영화가 많이 안 나와요.
김명우: 저도 동수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넷플릭스가 IPTV 같다는 그 말에 동감을 하는데요. OTT가 제공하는 콘텐츠가 다양하다고 했을 때, 다양성을 나타내는 듯한 포장을 잘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결국에는 되게 그 구조에서 상업적이고 어떻게 보면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마치 앞에서 말씀하신 <등산의 목적>의 예처럼 그런 식으로 수렴되는 이 구조에서 넷플릭스나 다른 OTT 플랫폼들이 자유롭고, 또 다양하게 콘텐츠를 소비자들로 하여금 고를 수 있다는 점을 잘 전달한 것 같아요.
배새롬: 그런 면이 분명히 있지만 이런 것들이 아예 없던 때에 비해서, 저는 OTT 이후로 접하는 건 다양해졌어요. 실제로 시청하진 않아도 ‘이런 게 있구나’라는 걸 느끼게 하는 영화들의 존재를 알게됐거든요. 예를 들면, 왓챠에 올라와 있는 <토마토 공격대>(1978)라는 영화 아세요? 되게 이상하고 웃긴 영화에요. 그러니까 정말 ‘B무비’이거든요. OTT 이전에 저는 ‘B급영화’로 분류되는 영화들이 있단 건 알았는데 실제로 ‘B급 영화’로 칭해지는 개별 작품들에 어떤 게 있는지는 몰랐어요. 그런데 OTT에 올라온 것들을 보니까 포스터나 썸네일만 봐도 ‘B급 영화’가 이런 걸 가리키는 거구나, 란 게 확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독립 영화란 범주에 한정되는 걸 제가 많이 보게 된 것 같진 않지만, 시청하는 텍스트가 확실히 늘어나기는 했어요. 옛날에 제가 봤던 것들이 한국 영화와 미국 한국 드라마 미국 드라마 조금이었다면 지금은 그래도 왓챠에 있는 건 다 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전에는 안 보던 영국 드라마도 보고요. 영화계의 다양성이 더 풍부해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라도, 사람 한 명이 접하는 콘텐츠 폭은 되게 늘어났을 것 같아요.
임유빈: 그런데 저는 이런 플랫폼이 아예 새로 생긴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없어진 유에포(yoUeFO) 같은 플랫폼도 있었고, 네이버 영화나 분명히 이런 식의 콘텐츠는 계속 있어왔다고 생각해요. 또한, 다양성이 1세계 중심이 아니라 주변화되어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정도라고 생각했을 때 과연 그럴까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것 같아요.
박동수: 그런 의미에서 정말 재밌는 건 넷플릭스가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제작하는 특정 국가의 영화들인 것 같아요. 한때는 태국 영화들이었고 지금은 나이지리아랑 남아프리카 영화들입니다.
임유빈: 오! 넷플릭스는 왜 그런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요?
박동수: 싸고 많이 만들어주니까요. 그리고 내수 시장은 확실히 잡혀 있고요. 나이지리아를 이제 놀리우드라고 부르잖아요. 거기가 이제 지금 할리우드 발리우드 다음으로 영화 많이 만드는 동네인데 거기가 지금 넷플릭스 이후로 뉴 놀리우드라고 불러요. 아예 넷플릭스 때문에 산업 자체가 바뀌어버렸거든요.8) 저는 똑같은 논리가 이제 한국의 영화 시장에도 굉장히 적용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넷플릭스가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심지어 예능까지 시장을 완전히 바꿔버렸잖아요. 영화보다 드라마 쪽이 더 타격이 크지만 저희의 주제는 아니니까 넘어가고 이야기하자면, 결국 몇 달 있으면 OTT에 있으면 뜰 건데 왜 보냐라는 관객이 일단 굉장히 많아졌죠. 여기에는 팬데믹과 그 여파로 급격하게 올라간 영화관 티켓값과 전반적인 물가 상승 등 많은 요인들을 함께 생각해야겠지만요.
김명우: 여러 플랫폼이 부상하는 시점에서 물론 독립영화와의 관계도 당연히 논의가 되어야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독립 영화가 잘 상영되기 위한 구조는 아니잖아요. 이게 말씀주신대로 OTT플랫폼이라는 것이 한국영화 시장에 굉장히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독립영화 또한 같이 말을 해야 하고, 또 그에 맞는 대응은 무엇일까 라는 식의 생각은 해야겠지만, 여전히 OTT라는 플랫폼에서 독립영화의 미래를 말하기란 참 어려운 것 같네요.
박동수: 맞아요. 그런 생각까지 드는 것 같아요. 이 영화가 개봉하고 극장에서 잘 안됐더라도 최종적으로 이게 넷플릭스랑 계약을 맺고 들어가면 어느 정도 이제 손해를 보전할 수 있으니 넷플릭스에 들어가는 것이 최종 목적처럼 여겨지는 거죠. 굳이 넷플릭스가 아니더라도, 작년에 <한산: 용의 출현>(2022)과 <비상선언>(2022)이 개봉한 지 한 달 만에 쿠팡플레이에 올라왔던 것처럼요. OTT에 올라가는 것을 어떤 최종 목적 최종 배급처로 생각하고 만들어지는 극장개봉작이 생겨난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10년 전만 했더라도 VOD와 IPTV는 말 그대로 부가 시장이었는데 지금은 메인 시장이 되어가는 것이죠. 저는 결국 독립 영화들도 이렇게 되는 건 아닐까, 영화제 한 바퀴 돌고 운 좋으면 개봉도 한 다음에 넷플릭스나 웨이브나 왓챠에 들어가는 걸 시작 목표로 삼게 돼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도 좀 드는 것 같아요.
배새롬: 그게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OTT가 없을 때보다 더 나쁜 일일까요? OTT 입점이 최종 목표가 되는 것이요?
김명우: 그 구조가 독립영화와 OTT 플랫폼과의 협력의 느낌이 아니라 독립영화가 거기에 종속되어 버리는 그러한 구조가 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생기는 것 같아요.
영화 보는 사람들: 영화청년, 영화광, 시네필과 영화사
박동수: 다음으로 저희가 가져온 질문이 동시대 영화 관람 문화는 과거랑 어떻게 달라졌는가에요. 90년대 신문들이 당시 비디오테크, 시네마테크를 다니던 사람들을 “영화 청년”이라고 부르고 어떤 범주화를 했었어요. 그렇다면 지금의 시네필 혹은 영화광 등은 어떻게 위치 지을 수 있을까요?
배새롬: 요즘 시네필은 약간 멸칭 아닌가요?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을 진짜 욕하는 건 아닌데 멸칭으로서의 '시네필'이라고 불리는 이미지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영화 보는 걸 좋아해도 ‘나 시네필이야’라고 안 하고요. 왜 이렇게 됐을까요? 'GV 빌런'들 때문일까요?
임유빈: 저는 시네필이 멸칭으로 쓰이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요즘에는 또 아닌 분위기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 80~90년대 영화를 좋아했던 영화청년들이 보던 영화를 지금 2020년대의 씨네필이 다시 많이 보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스탠 브래키지의 영화, 마이클 스노우의 영화들도 그렇고요. 그때 당시 가장 많이 보던 실험 영화들 다시 보고 있고요. 오히려 이제 시네필을 멸칭으로 사용하는 단계를 넘어서 시네필을 멸칭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무례한 사람이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배새롬: 사실 시네필을 멸칭으로 쓰는 사람들조차 한 줌인 것 같아요. 영화를 그래도 많이 보는 사람들이 그런 표현을 쓰겠죠? 영화에 아예 관심이 없다면 시네필이라는 말조차 쓰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박동수: 오히려 지금 시네필은 거의 마케팅용이라고 생각해요. 바른손이앤에이가 만드는 MMZ라는 영화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잖아요. 심지어 유료 회원제를 모집하는데, 1,895명밖에 안 받아요. 영화가 1895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그런 식으로 호명되는 것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아요. 모임을 만들기 위해서 혹은 이제 굿즈를 팔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시네필이라고 호명되는 사람들은 조금 넓어졌다는 생각은 듭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시네필로서 정체화하는 사람이 그만큼 있을까 생각하면 저는 별로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배새롬: 시네필이 되려면 정말 많이 봐야 되잖아요. 20~30년 전 시네필이 봐야 하는 영화와 지금의 시네필이 봐야 하는 영화의 편수 차이는 차이가 크지 않을까요? 영화를 보는 경로가 많아지고 그동안 생산된 영화도 더 쌓인 만큼, ‘시네필’이라면 당연히 보았을 것으로 간주되는 영화의 편수가 늘어난 거 같아요.
박동수: 사실 근데 시네필이라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자격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잖아요. 라이센스가 아니니까. 어쨌든 개념일 뿐인데,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영화를 진지하게 보는 사람이 없어지고 있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배새롬: 맞아요, 시네필이 멸칭이 된 것도 그런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에 대한 진지함을 못 참는 세대에게는 시네필이 웃겨 보일 수도 있겠죠. 한편으로는 그런 면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들 자기가 시네필이 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자기를 시네필이라고 안 부르는 건 아닐까요?
박동수: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을 것 같은데, 약간 분리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자기 자신이 시네필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시네필일거예요.
임유빈: 그리고 시네필이 멸칭으로 사용됐다면, 『키노』 나 90년대 시네필 세대들이 스스로를 시네필이라고 호명했기 때문에, 그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영화 문화가 사실 대중과 가까이 있었다고는 할 수 없잖아요. 거기에서 오는 괴리감들이 있었고요. 그래서 시네필을 멸칭으로 분류하는 것은 결국 대중과의 거리 두기를 시도했던 그 세대에 대한 사실에 대한 재해석 혹은 격하의 의미도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박동수: 저도 그 명명에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어요. 문화원 세대를 흔히 한국의 1세대 시네필로 부르잖아요. 그러면 그전에 한국의 시네필은 없었던 건가라는 생각이 좀 드는 거죠. 예를 들어서 문화원에서만 해외의 아트하우스 영화들을 볼 수 있었던 시대였다고 하더라도, 그 밖에도 굉장히 많은 영화들이 있었잖아요. 한국 영화도 많고 수입 영화도 많고, 그것들을 보는 사람들은 그런 시네필이 아니었던 걸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문화원에서 영화 30편 보는 사람과 개봉하는 영화 100편 보는 사람 중에 누가 시네필일까 같은 의문들이요. 결국은 스스로를 시네필이라고 지칭하는 문화원 세대 사람들이 계속 변화하는 영화 운동과 충무로 사이에서 혹은 검열과의 싸움 사이에서 자신만의 비평장을 획득하기 위해 벌인 헤게모니 투쟁 사이에서 나온 명명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다면 더더욱 저희 세대가 그런 윗세대를 보고 시네필로 스스로를 정체화하기에 거부감을 갖는 게 당연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있어요.
김명우: 당시의 문화원에서 봤던 영화라고 하면 프랑스나 독일 문화원에서 보던 상업적인 영화는 아니고 예술적인 영화와 같은 것들인데, 그런 것을 보았다, 혹은 그런 영화를 보러 간다는 식의 특권의식이랄까요? 일반적인 취향이 아니라는? 영화청년 이전에 문학청년이라는 게 있었던 것처럼 그런 식으로 무언가 미학적인 측면에서의 선두에 서서 문화를 향유하는 그런 의식이 시네필에게 있었던 것 같아요.
임유빈: 그런 면에서 저는 고학력 지성인 영화 단체들이 만들어놓은 80~90년대 영화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보기 힘든 것들이 있거든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2023) 같은 것이요. 봉준호의 영화 단체는 아직 한국영화사 내부에서 서술되지 못하니까 이렇게라도 영화 만들기를 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시네필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나를 어떻게 정전화하느냐의 문제랑 계속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박동수: 『한국영화운동사』에 노란문 영화 연구소는 또 없으니까요.
배새롬: 옛날에 문화원에 가지 않고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영화광’이라고 불렀잖아요. 예술 영화나 이런 게 아니라 이소룡 영화나 홍콩 영화, 동시 상영 영화들을 많이 보던 사람들은 ‘예술영화 보는 시네필’과 다르게 범주화된 거 같아요.
김명우: 그런 것에 비해 시네필은 좀 더 아카데믹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좀 더 영화문법에 관심이 있다든지, 이론적인 접근이라든지요.
영화 보는 사람들의 모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영화 커뮤니티
임유빈: 그렇다면 시네필하고 이제 동시대 영화 관람 문화가 과거랑 어떻게 달라졌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박동수: 시네필들, 그러니까 영화를 많이 보는 영화광들에 한정 지어서 얘기를 한다면, 어쨌든 극장에서 영화 보기 좋아하고 영화제와 기획전을 매진시키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그 밖의 영화를 주로 보는, 영화의 어떤 저관여층들을 떠올려 봤을 때 이 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변했죠.
김명우: 변했다고 하는 게 일반 극장의 관객들이요?
임유빈: 식민시기 영화 대중 연구를 보면, 지금처럼 스스로를 검열하는 영화관이 아니라 어떤 만남의 장과 같은 그런 단관 문화 이런 것들에 대해서 계속 얘기를 하잖아요. 대안 공간 같은 지점에서요. 그런데 사실 지금의 영화 관객들은 그거를 못 견디는 거잖아요. 검열하고 스스로를 계속 통제해야 하는 영화 장소에 대한, 그런 지점에서 사실 영화 관람 방식에 대한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김명우: 멀티플렉스 관객들의 반응과 영화제나 예술영화관 같은 곳에서의 관객들의 반응이 약간 다른 것 같기도 해요. 물론 여러 가지 상황도 있을 것이고, 관객의 취향이라든지 그런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이겠지만요. 제가 어렸을 때는 주로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봤었는데, 그때를 기억해 보면 항상 관객이 많은 그런 극장의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코미디 영화를 보면 같은 포인트에 같이 웃는 그런 모습이라든지, 근데 예술영화관이나 이런 곳에서는 혼자 영화를 보러오는 사람도 많고, 중간에 나가는 사람이라든지, 조금 더 자유롭게 영화를 본다는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과거 경험했던 멀티플렉스에서의 영화 관람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는 인상이 있었던 것 같네요.
임유빈: 맞아요. 어쨌든 영화를 잘 만들면 자동적으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잖아요. 신체가 반응을 하니까요. 그런데 이제 갑자기 절제된 영화 관람을 계속 강조하는 것은 사실 그런 영화를 잘 못 만들어서가 아닐까요..
저는 한국 영화와 한국영화계가 자애로운 관객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가 계속 이해를 하려고 하잖아요. 극장이 이 영화를 왜 자꾸 틀어 혹은 영화를 왜 이렇게밖에 못 만들어라는 게 산업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자꾸 이해를 하려고 하잖아요. 돈이 별로 없어서 그렇대 혹은 어떤 경기가 안 좋대 이런 문제로 이해를 하려고 하는데 사실 잘 만든 영화라고 한다면 어쨌든 줄어가는 한국 영화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 관객들의 관용을 요구하는 한국 영화계가 전반적으로 반성해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박동수: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아까도 OTT의 다양성 얘기를 하긴 했지만 실제로 보진 않아도 굉장히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심어주잖아요. 내가 표를 끊고 시간이 맞는 것만 볼 수 있다 라는 게 영화관의 태도라면, OTT는 모든 것이 열려 있으니까 너 마음대로 하라고 하니까요. 그렇게 이미 관객이 가질 수 있는 자유도는 훨씬 높아졌는데 영화관과 그를 포함한 한국 영화 산업 자체가 관객한테 바라는 것은 굉장히 반대되어 있는 것 같아요. 더군다나 영화 자체의 퀄리티가 따라주지 못하다 보니 그런 반응이 나오고요. 그리고 한국 영화의 관객은 거의 모든 경우에서 독립 영화의 관객과 많이 겹치다 보니 오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독립영화에도 비슷한 기준을 들이대게 되는?
배새롬: 한국 영화 관객이 독립영화 관객과 겹치나요?
임유빈: 이도훈 평론가의 『이방인들의 영화: 한국 독립영화가 세상과 마주하는 방식』(갈무리, 2023)이라는 책을 보면 2010년대 이후에 한국 영화의 베스트를 꼽으면 대부분 사람들이 독립 영화를 후보에 올리는 것 보면서 사실상 한국 영화의 대부분은 독립 영화에 속하지 않느냐는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한공주>(2013), <벌새>(2018), <파수꾼>(2011) 같은 영화들이요.
배새롬: 그건 또 흥행이랑은 다르잖아요. 최고의 한국 영화 같은 걸 뽑는 사람들이 ‘천만 영화’의 관객 일반을 대표할 수 있는 일반 관객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한국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들이 독립 영화를 많이 본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박동수: 반대로 독립 영화의 관객이 한국 영화의 일반관객일 거라는 얘기예요. 예를 들어서 <메기>(2019)나 <벌새>(2018)를 좋아하는 사람이 <밀수>(2023)나 <서울의 봄>도 보겠죠. 다만 어쨌든 영화 커뮤니티들도 상업영화가 개봉했을 때 그 영화 얘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요.
임유빈: 맞아요, 그리고 시사회 티켓도 다 거기에서 풀리잖아요. 거기가 주력 타깃이고요.
박동수: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과거에 영화 청년으로 불렸던 90년대 시네필과 지금의 영화광, 영화 마니아들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얘기했을 때, 영화를 볼 수 있는 플랫폼과 어떤 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의 가짓수 자체만 놓고 본다면 더 많은 일단 자유도가 생겼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극장개봉작이 아닌 것 혹은 독립 영화가 아닌 것에 좀 더 우선순위가 가게 되었다 정도로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가 계속 영화 운동 시대 얘기를 했지만 그때는 영화 공동체가 와장창 쏟아져 나왔던 때잖아요. 운동과 관계없는 단순히 영화 애호가들의 공동체도 있었고요. 예를 들어서 90년대에 시네마테크 운동 같은 걸 했다면 충무로로 간다, 영화를 만든다, 제작한다, 배우를 한다, 혹은 글을 쓴다, 활동가가 된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해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있지만 이름을 남기지 않은 무수한 사람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그 사람들을 순수한 의미에서 관객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그러한 관객 공동체 근데 혹은 영화를 제작하고 비평하는 것을 포함한 공동체일지라도 지금의 상황에서 가능할지 궁금해요. 그리고 그게 어떤 식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를 얘기해 보고 싶어요. 왜냐하면 지금 독립영화 쪽에는 그게 부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먼저 얘기 이어가자면, 물론 지역에서 이제 지역 독립영화협회라든가 독립예술영화관, 혹은 그곳과 긴밀하게 연관을 갖고 활동하는 여러 지역 영화 단체, 청년단체가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대전의 INK라든가 그런 곳들이 있죠. 저는 그래서 최근 2~3년이 기점이라는 생각이 들긴 들어요. 90년대에 지역별로 시네클럽이 생겼던 것처럼, 지금 다시 조금씩 생겨나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뭔가 과거의 역사를 반복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단순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반복을 넘어서서 다른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지켜봐야 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다만 이건 오프라인에서의 영화 공동체들에 대한 얘기이고 온라인으로 옮겨간다라고 했을 때, 저는 정말 머리가 복잡해지네요. 다만 한 가지 얘기하고 싶은 건, 제가 이번에 기획전에서 상영하고 싶다고 한 영화가 이응일 감독의 <불청객>(2010)이잖아요. 영화의 첫 장면은 “이 영화를 디시인사이드에 바친다”라는 자막입니다. 이 감독은 서울대 얄라성 출신이면서 동시에 DC 영화 갤러리 출신이기 때문이고, 심지어 영화가 개봉했을 때도 '형이 영화 찍었다'라고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죠.9) 영화를 보면 2000년대에 많이 있었던 잉여인간 담론, 나는 사회에 잉여고 쓰레기고 아무것도 할 게 없고 백수라는 패배의식과 허무주의에서 출발하는 영화예요. 다시 말해서 오프라인 영화 공동체의 문화라기보다는 온라인에 존재하는 영화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한국의 온라인 커뮤니티의 문화들을 그 영화 안에 접합시킨 사례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그런 사례가 등장한 이후에, 본격적으로 익스트림 무비가 커뮤니티화되고 DC 영화갤러리가 다른 여러 갤러리들로 분화하는 과정들을 거치면서 영화 커뮤니티들의 파편화가 일어났어요. 동시에 커뮤니티들이 독립 영화와 충무로의 마케팅 대상이 되면서 커뮤니티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돼버리는 양쪽의 상황이 같이 와서 결국 이쪽도 기능을 못하게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트위터나 왓챠피디아, 혹은 DC 마이너 갤러리 등에서 굉장히 파편화된 형태로 각자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몇몇 블로거들 등이 많이 남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제가 지난 10몇 년 동안 온라인 영화 커뮤니티를 봐오면서 경험적으로 하는 말이고 뚜렷하게 제시할만한 증거는 없지만 그렇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온라인 영화 커뮤니티에 한정해서는요. 그래서 지금 상태에서 과연 MMZ 같은 기획은 가능할 것인가 물어본다면 망할 것이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임유빈: 저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온라인 커뮤니티가 파편화된 것에는 동의하고, 그에 반해 영화 마케팅이라든지 아니면 시네마테크가 그 파편화된 관객들의 영향을 받고 있음은 자명하다는 생각은 드는 것 같아요. 그들에게 핫한 인물 소위 영화 좀 안다고 그들이 인정하는 인물들, 많이 회자되는 영화들이 사실상 영화제에서 대부분 매진 되기는 하고요.
오프라인 영화 커뮤니티라고 했을 경우, 저도 시네클럽 소행성과 함께 공동체 상영회을 기획해 봤지만, 지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자비로밖에 진행을 하지 못했어요. 작은 상영회라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지속되기에는 현실적으로 진짜 돈이 많이 들어요. 모든 것을 적법하게 진행하려면 자본의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죠. 사실상 관객 후원도 거의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되게 어렵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결국 소행성도 잠정적으로 활동을 멈춘 상태인 것 같아요. 그곳도 한 3년 정도 그래도 매주 상영회를 했었는데요. 지원을 받아 운영하던 작은 영화제의 예산도 삭감되고, 예산 바깥에 있던 마이너한 시네클럽 역시도 거의 운영되지 않고 있는데요.
얘기를 들어보면서 든 생각은 영화 커뮤니티가 영화제 관객으로서는 기능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를테면, 공통의 관심사로 모이게 되는 영화제들이요. 서울동물영화제라든지 여성영화제라든지, 영화제가 커뮤니티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국제영화제들은 사실상 그런 기능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물론 마켓은 또 다른 이야기겠죠. 그리고 영화제는 우선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거기서 커뮤니티가 생겨난다고 해도 사실상 그것들이 너무 자본이 많이 드는 커뮤니티로서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 애호가라는 측면에서의 국제영화제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고요, 동물권, 페미니즘, 배리어프리와 같은 측면에서는 커뮤니티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명우: 말씀해 주신 온라인/오프라인 집단 같은 경우에 과거에는 이제 영화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는 형태의 하나의 담론으로 되게 똘똘 뭉쳐진 그런 성격을 보였는데, 사실 지금은 그런 식의 단일한 성격을 지니거나 규명하기 어려운 상태로 커뮤니티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영화 커뮤니티에 대한 논의가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그렇다면 모극장 같은 경우도 커뮤니티가 될 수 있을까요?
박동수: 모극장 같은 경우에는 커뮤니티 시네마들이 활동을 할 수 있게 지원해 주는 단체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공동체 상영할 때 상영 가능한 영화 카탈로그를 보유하고 있어요. 약간 중개업에 가까운 느낌이죠. 혹은 이제 커뮤니티 시네마, 공동체 상영회 혹은 시네클럽 등을 조직할 때 활동가 교육을 한다거나, 그런 활동들을 많이 하죠. 예를 들어 모극장이 가지고 있는 카테고리 안에 없는 영화를 틀고 싶다, 그러면 배급사를 어떻게 컨택을 하고 돈을 얼마를 주고 해야 되는가, 그런 것들을 교육하는 거죠. 모극장뿐만 아니라 인디그라운드나 등에서도 그런 사업들을 진행했었고, 아주 작게는 지역 문화재단 같은 데서도 가끔 그런 사업을 했었어요. 이 사업들을 통해 전국 곳곳에 커뮤니티 시네마가 분명히 존재하긴 해요. 다만 이렇게 말하면 좀 죄송하기도 하지만, 가까스로 연명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최근에 제일 흥미로웠던 국내 시네클럽 사례는 동국대학교 '차차 시네마테크'입니다. 대학교라는 틀이 있고 학교 안에서는 기본적으로 영화 상영관 대관료가 없잖아요. 그리고 학교가 자연스럽게 사람을 모으는 부분도 있고 학교이기 때문에 접근성 자체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것도 있고요. 그런 다양한 여건들 때문에 차차 시네마테크가 굉장히 지금 호응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험적인 영화들, 아까 이야기 나왔던 스탠 브래키지 영화를 직접 필름으로 튼다던가, 거기서 재직중인 핍 초도로프 교수가 필름들을 소장하고 있기도 하고요. 정재훈 감독의 단편 영화 상영처럼 독립 영화들과의 어떤 교류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할 수 있었던 토대로서의 학교가 굉장히 긍정적으로 기능한 사례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학교에서 거기를 지원해 준 건 아니지만, 학교 안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활용할 수 있었던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 장소가 없는 경우가 많고, 돈이 없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3년이든 5년이든 활동하다가 없어지는 곳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이 부분이 하나의 어떤 이념이나 사상을 가지고 모였던 과거와는 다른 지점인 것 같아요. 심지어 과거에도 결국 장소 기반으로 모였잖아요. 대학교가 됐든 문화학교 서울이 됐든 말이죠. 물론 어느 정도 탄압을 받았다고 해도요.
임유빈: 저는 궁금한 게 있는데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하시면서 그러니까 파편화됐다고 하지만 영화제나 시네마테크가 반응은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반응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반응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나요?
박동수: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이 실제로는 10명밖에 안 되는 한 줌일 수도, 굉장히 과대표된 거일 수도 있지만 결국 표출되는 목소리가 그거밖에 없으니까요.
배새롬: 제가 가끔 듀나 커뮤니티를 봤는데요. 그 커뮤니티는 듀나를 아는 사람들에겐 굉장히 존재감이 컸던 것 같은데 마케팅 측면에서는 고려가 안 되는 집단인가 봐요.
박동수: 지금은 사실상 죽은 커뮤니티나 다름 없는 … 듀나가 트위터로 활동지를 옮겨가고 나서, 물론 듀나가 계속 글을 쓰긴 하지만, 상주하는 유저 자체가 많이 줄었죠. 심지어 메인 게시판에 글이 하루에 10개도 안 올라오네요.
배새롬: 진짜 게토가 됐군요.
박동수: 마무리로 저희의 기획이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좋겠는지 이야가하면서 정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배새롬: 비평가라는 타이틀이 별거 아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쟤네 뭔데 저런 거 하지? 영화비평이라더니 별거 아니구나', 이렇게요.
박동수: 저희가 뭔가 준비를 이것저것 하긴 했지만, 사실 마구잡이 신변잡기식으로 떠드는 것도 많았잖아요. 이런 얘기를 하는 마구잡이로 해주는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명우: 이번 비평가 지원 사업을 통해 기획에 참여하면서 이렇게 대담을 했는데, 앞으로도 한국 독립영화에 대한 여러 다양한 생각들을 여러 사람들과 더 많이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박동수: 이 기획전이 이렇게 저희와 같이 떠들 수 있는 기획전이 됐으면 좋겠다 정도의 바람이 있습니다.
임유빈: 저희가 나눈 산만한 질문은 영화를 좋아하는 모두와 이야기해보고 싶은 지점이기도 하고요. 저는 이번 기획전을 준비하면서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던 독립영화에 대한 생각이 좀 많이 바뀌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분들에게도 이 기획전이 그렇게 다가갔으면 좋겠고 그렇습니다.
1) 기획전 '독립영화하다' 소개글 https://indiespace.kr/5784 대담 내용과 관련하여 다음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박동수, "독립영화하다?:독립영화와 제도, 그 안팎의 영화들에 대해", 『독립영화』, 52호. 2023, p.56-64.
2) 1998.9.18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선언문
3) 이도훈, 『이방인들의 영화』, 갈무리, 2023, p.31-34.
4) 관련하여 성하훈 기자의 『한국영화운동사』(푸른사상, 2023) 2부작을 참고할 수 있다.
5) 관련한 내용은 '아카데미의 친구들'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wonjuacademy1963/)과 인터뷰(https://actmediact.tistory.com/1825)를 참고하라.
6) 대담이 진행된 2023년 11월 23일 “강릉시영상미디어센터 정상 운영을 바라는 시민모임”에서 예산 삭감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7) 정부 지원금을 받은 한국 상업영화를 우선으로 극장에서 OTT 플랫폼 공개를 '극장 개봉 후 6개월'로 유예하는 규정이 논의 중이다. https://www.mk.co.kr/news/culture/10924463
8) 변재길, "디지털 시대의 놀리우드 영화 산업", 『세계와 도시』, 12호, 2015. p.49-59.
9)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hit&no=9880&page=1
박동수, "독립영화하다?:독립영화와 제도, 그 안팎의 영화들에 대해", 『독립영화』, 52호. 2023, p.56-64.
2) 1998.9.18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선언문
3) 이도훈, 『이방인들의 영화』, 갈무리, 2023, p.31-34.
4) 관련하여 성하훈 기자의 『한국영화운동사』(푸른사상, 2023) 2부작을 참고할 수 있다.
5) 관련한 내용은 '아카데미의 친구들'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wonjuacademy1963/)과 인터뷰(https://actmediact.tistory.com/1825)를 참고하라.
6) 대담이 진행된 2023년 11월 23일 “강릉시영상미디어센터 정상 운영을 바라는 시민모임”에서 예산 삭감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7) 정부 지원금을 받은 한국 상업영화를 우선으로 극장에서 OTT 플랫폼 공개를 '극장 개봉 후 6개월'로 유예하는 규정이 논의 중이다. https://www.mk.co.kr/news/culture/10924463
8) 변재길, "디지털 시대의 놀리우드 영화 산업", 『세계와 도시』, 12호, 2015. p.49-59.
9)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hit&no=9880&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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