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문병호·남승석 지음, 『벤야민-아도르노와 함께 보는 영화』 - 유건식
2024년 1월 출간된 『벤야민-아도르노와 함께 보는 영화』(남승석, 문병호 지음)는 “영화 해석의 주요 텍스트로 사용되어 온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은 물론이고 그의 『독일 비애극의 원천』, 「운명과 성격」에서, 그리고 아도르노의 미학·예술이론, 역사철학, 사회이론에서 주요한 영화미학적 개념들을 도출하여 새롭고 실험적인 영화해석을 시도”합니다. 두 저자는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사유로부터 다섯 편의 동아시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 한국), <택시운전사>(2017, 한국), <여름궁전>(2006, 중국),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대만), <복수는 나의 것>(1979, 일본)을 비평하고 해석합니다.
벤야민의 영화적 사유에 관한 연구서를 집필한 캐서린 러셀의 문장이 생각납니다. “영화 연구는 그를 인용할 때마다 매번 그와 도박한다.”(Catherine Russel, 2018) 그는 벤야민이 영화에 관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텍스트를 쓴 적은 없으나, 영화는 그의 생애에 걸쳐 서술된 이론의 중심에 놓여 있다고 설명합니다. 벤야민의 독특하고도 산발적인 텍스트는 아도르노를 비롯한 당대의 이론가들과, 그리고 현재의 이론가와 비평가에도 열려 있는 해석의 도전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벤야민-아도르노와 함께 보는 영화』가 더욱 궁금합니다.
아래 유건식 선생님의 『벤야민-아도르노와 함께 보는 영화』 서평을 공유합니다.
『벤야민-아도르노와 함께 보는 영화: 국가 폭력의 관점에서』를 읽고
영화에 대한 이해도 깊지 않고 벤야민과 아도르노에 대해 더욱 문외한인 필자에게 두 분야를 전문으로 쓴 『벤야민-아도르노와 함께 보는 영화』의 서평 요청이 왔다. 처음에는 고사했다. 그럼에도 출판사에서 재차 요청이 오기도 하고, 존경하는 저자인 남승석 교수님과의 인연 때문에 수락했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출간 소식을 듣고 내심 읽어 보고는 싶은 책이었다. 한 줄 평을 한다면 생각보다 빨리 완독했고, 많은 철학 개념을 공부하고, 영화를 해석하는 법을 배웠다.
두 저자, 문병호 교수님과 남승석 교수님은 아시아 영화 중에서 상업영화이지만 예술 영화로 해석할 수 있는 다섯 편을 선정하여 영화 자체에 대한 해석과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과 테어도어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 1903-1969)의 사상으로 해석한다. 저자들이 선정한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 <택시운전사>, <여름궁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복수는 나의 것> 등 다섯 편이다. 저자들은 세계사를 “부자유한 노동을 강제당하면서 지배 권력에 의해 파편화된 삶을 살아가는 다수의 피, 눈물, 고통, 죽음의 역사”로 해석하고, 소개한 영화들이 역사적으로 발생한 비극적인 사태에서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과 개별 인간들이 당하는 고통을 표현하여 예술성을 띠었다고 평가한다.
이 책은 남승석 교수님과 문명호 교수님이 아니면 쓸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우선 든다. 남승석 교수님은 철학과 영화를 전공하고 문화와 도시를 연구한 영화감독이자 교수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양수겸장의 실력을 갖고 있다. 남승석 교수님이 국가 폭력과 관련된 다섯 편의 영화를 선택하여 영화 내용과 기법을 설명한 후, 공저자인 벤야민과 아도르노 연구자 문병호 교수님이 국가 폭력과 관련된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사상을 바탕으로 해석했다.
책을 읽고 배운 점은 첫째,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영화에 대한 관점이다. 두 철학자는 1세대 프랑크푸르트학파로 명성이 자자한 학자들이다. 주요 저작은 벤야민이 1936년 쓴 논문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과 아도르노가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쓴 『계몽의 변증법』이다. 벤야민은 기술적으로 대량 복제가 가능한 영화가 파시즘에 오용될 위험을 경계하면서도 대중의 의식을 변혁시킬 수 있는 영화의 가능성을 포착하였다. 반면 아도르노는 영화가 대중을 조작하고 기만하여 상업성과 오락성에 묶어 둔다고 비판하였다. 저자들은 3년간의 공동 연구를 통해 다섯 편의 영화에서 벤야민이 바랐던 영화가 대중 의식을 계몽하는 소망을 찾아내고 기대한다고 보인다.
책을 읽으면 예술적 인식, 알레고리, 세계가 인간에게 강요하는 고통의 역사(세계의 고통사), 자연사, 예외 상태, 과거의 진정한 형상, 운명, 죄의 연관관계, 소도구, 폐허, 파편화, 탈영혼화, 예술작품의 수수께끼적 성격, 가상, 미메시스, 무의식적인 역사 서술, 이데올로기, 개인의 폐기, 의미 매개, 의미 형성 등의 용어 뜻과 출처, 해석을 배울 수 있다. 처음에는 이해가 쉽지 않았으나 ‘국가 폭력’이라는 화두를 갖고 다섯 편을 읽으면서 점차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둘째, 다섯 편의 영화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근거로 시도된 많은 영화해석에 이어 벤야민의 저서 『독일 비애극의 원천』이나 논문 「운명과 성격」에서 도입된 중요 개념들, 그리고 아도르노의 미학·예술이론, 역사철학, 사회이론에서 차용한 개념들을 통해 영화 해석을 시도한다. 영화별로 저자들이 달아 놓은 소제목만 봐도 얼마나 다양하고 깊이 있게 해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알레고리와 형상화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
<택시운전사>
<여름궁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복수는 나의 것>
셋째, 예술 영화와 대중 영화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상업 영화에 대해 순수 예술성이 있다는 주장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책을 읽으면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상업 영화에도 감독의 철학이 녹아 있다면 더 멋진 작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섯 작품은 세계 인식 능력과 세계 변혁의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읽은 히시이시 조와 요로 다케시의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읽는다』에 아도르노의 『신음악의 철학』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에서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음악만이 철학의 대상이 될 가치가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사용된 음악도 이 기준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넷째, 새로운 중국, 대만, 일본 대작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접한 <여름궁전>, <고령가 살인사건>, <복수는 나의 것>은 이 책이 아니면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개봉한 지 오래되었고, OTT 플랫폼에도 찾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그렇지만 <고령가 살인사건>은 1995년 BBC 선정 21세기에 남기고 싶은 영화 톱 100에도 선정되었고, 봉준호 감독이 감상을 추천하는 1순위이고, 시간나면 꼭 봐야할 영화로 꼽는 작품이다. 유튜브에서 작품 소개를 봤지만, 꼭 찾아서 감상해야겠다.
책을 읽는 내내 연속 감탄했다. 어떻게 똑같이 영화를 보고도 이렇게 해석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두 저자의 영화에 대한 깊이와 철학을 갖고 영화를 선택하고 해석한 노력에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영화의 이해를 깊게 하고자 한다면 시간을 내어 읽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앞에서 소개한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읽는다』에 피타고라스 학파는 이 세상에 존재해도 되는 음악의 하나로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평온한 음악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에게 이 책이 피타고라스 학파가 말하는 평온한 음악이 되기를 바란다.
유건식*
영화에 대한 이해도 깊지 않고 벤야민과 아도르노에 대해 더욱 문외한인 필자에게 두 분야를 전문으로 쓴 『벤야민-아도르노와 함께 보는 영화』의 서평 요청이 왔다. 처음에는 고사했다. 그럼에도 출판사에서 재차 요청이 오기도 하고, 존경하는 저자인 남승석 교수님과의 인연 때문에 수락했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출간 소식을 듣고 내심 읽어 보고는 싶은 책이었다. 한 줄 평을 한다면 생각보다 빨리 완독했고, 많은 철학 개념을 공부하고, 영화를 해석하는 법을 배웠다.
두 저자, 문병호 교수님과 남승석 교수님은 아시아 영화 중에서 상업영화이지만 예술 영화로 해석할 수 있는 다섯 편을 선정하여 영화 자체에 대한 해석과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과 테어도어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 1903-1969)의 사상으로 해석한다. 저자들이 선정한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 <택시운전사>, <여름궁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복수는 나의 것> 등 다섯 편이다. 저자들은 세계사를 “부자유한 노동을 강제당하면서 지배 권력에 의해 파편화된 삶을 살아가는 다수의 피, 눈물, 고통, 죽음의 역사”로 해석하고, 소개한 영화들이 역사적으로 발생한 비극적인 사태에서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과 개별 인간들이 당하는 고통을 표현하여 예술성을 띠었다고 평가한다.
이 책은 남승석 교수님과 문명호 교수님이 아니면 쓸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우선 든다. 남승석 교수님은 철학과 영화를 전공하고 문화와 도시를 연구한 영화감독이자 교수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양수겸장의 실력을 갖고 있다. 남승석 교수님이 국가 폭력과 관련된 다섯 편의 영화를 선택하여 영화 내용과 기법을 설명한 후, 공저자인 벤야민과 아도르노 연구자 문병호 교수님이 국가 폭력과 관련된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사상을 바탕으로 해석했다.
책을 읽고 배운 점은 첫째,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영화에 대한 관점이다. 두 철학자는 1세대 프랑크푸르트학파로 명성이 자자한 학자들이다. 주요 저작은 벤야민이 1936년 쓴 논문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과 아도르노가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쓴 『계몽의 변증법』이다. 벤야민은 기술적으로 대량 복제가 가능한 영화가 파시즘에 오용될 위험을 경계하면서도 대중의 의식을 변혁시킬 수 있는 영화의 가능성을 포착하였다. 반면 아도르노는 영화가 대중을 조작하고 기만하여 상업성과 오락성에 묶어 둔다고 비판하였다. 저자들은 3년간의 공동 연구를 통해 다섯 편의 영화에서 벤야민이 바랐던 영화가 대중 의식을 계몽하는 소망을 찾아내고 기대한다고 보인다.
책을 읽으면 예술적 인식, 알레고리, 세계가 인간에게 강요하는 고통의 역사(세계의 고통사), 자연사, 예외 상태, 과거의 진정한 형상, 운명, 죄의 연관관계, 소도구, 폐허, 파편화, 탈영혼화, 예술작품의 수수께끼적 성격, 가상, 미메시스, 무의식적인 역사 서술, 이데올로기, 개인의 폐기, 의미 매개, 의미 형성 등의 용어 뜻과 출처, 해석을 배울 수 있다. 처음에는 이해가 쉽지 않았으나 ‘국가 폭력’이라는 화두를 갖고 다섯 편을 읽으면서 점차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둘째, 다섯 편의 영화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근거로 시도된 많은 영화해석에 이어 벤야민의 저서 『독일 비애극의 원천』이나 논문 「운명과 성격」에서 도입된 중요 개념들, 그리고 아도르노의 미학·예술이론, 역사철학, 사회이론에서 차용한 개념들을 통해 영화 해석을 시도한다. 영화별로 저자들이 달아 놓은 소제목만 봐도 얼마나 다양하고 깊이 있게 해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알레고리와 형상화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
<택시운전사>
<여름궁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복수는 나의 것>
셋째, 예술 영화와 대중 영화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상업 영화에 대해 순수 예술성이 있다는 주장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책을 읽으면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상업 영화에도 감독의 철학이 녹아 있다면 더 멋진 작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섯 작품은 세계 인식 능력과 세계 변혁의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읽은 히시이시 조와 요로 다케시의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읽는다』에 아도르노의 『신음악의 철학』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에서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음악만이 철학의 대상이 될 가치가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사용된 음악도 이 기준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넷째, 새로운 중국, 대만, 일본 대작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접한 <여름궁전>, <고령가 살인사건>, <복수는 나의 것>은 이 책이 아니면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개봉한 지 오래되었고, OTT 플랫폼에도 찾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그렇지만 <고령가 살인사건>은 1995년 BBC 선정 21세기에 남기고 싶은 영화 톱 100에도 선정되었고, 봉준호 감독이 감상을 추천하는 1순위이고, 시간나면 꼭 봐야할 영화로 꼽는 작품이다. 유튜브에서 작품 소개를 봤지만, 꼭 찾아서 감상해야겠다.
책을 읽는 내내 연속 감탄했다. 어떻게 똑같이 영화를 보고도 이렇게 해석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두 저자의 영화에 대한 깊이와 철학을 갖고 영화를 선택하고 해석한 노력에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영화의 이해를 깊게 하고자 한다면 시간을 내어 읽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앞에서 소개한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읽는다』에 피타고라스 학파는 이 세상에 존재해도 되는 음악의 하나로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평온한 음악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에게 이 책이 피타고라스 학파가 말하는 평온한 음악이 되기를 바란다.
* KBS 시청자서비스부 박사로 전 KBS 아메리카 대표와 KBS공영미디어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성균관 스캔들>과 <굿닥터> 미국 리메이크 <The Good Doctor> 프로듀서이다. 저서로 <미드와 한드 무엇이 다른가>, <넷플릭스노믹스>, <남한산성을 걷다>, <OTT 트렌드 2024> 등이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와 성균관대 미디어융합대학원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