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영 감독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 (2019)
수리솔 수중 연구소에서 (2020) 



피할 수 없는 종말을 즐기는 법 _ 난둘


존재(being)의 다공성이자 존재함(living)의 다공성. 즉,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정형화되지 않음의 계곡에서 떠나오게 된 광물이자 데이터 클러스터인 페트라 제네트릭스는 역설적으로 무질서하기에 질서로 가득 찬 크립토밸리로 도착하게 된다.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being)와 존재함(living)이 한정된 객체들의 모임은 객체를 주체로 임명하여 그들로 하여금 객체-사이의-연결을 절단하도록 만들었고, 잘 구획된 듯 보이는 네모반듯한 세계 그러나 얼기설기 만들어 낸 것이 분명한 구역은 페트라 제네트릭스를 질병의 방지와 방대한 데이터의 질서화라는 명목으로 이주 불가능 판단을 내리게 만든다.

더는 환대가 불가능해진 세계에서 페트라 제네트릭스와 같은 다공의 물질이자 객체는 어떻게 존재함(living)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은 결국 페트라로 하여금 또 다른 세계로의 이주 즉, 크립토밸리에서의 생존 불가능 진단을 내리며 크립토밸리의 다공화 가능성에 부정적인 시선을 내비친다.

그러면서도 김아영 감독은 <수리솔 수중 연구소에서> 해조류 원료 관리소라는 수리솔 수중 연구소를 등장시키며 크립토밸리에서 크립토밸리를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듯하다. 수리솔은 부산 해저 깊은 곳에 위치한다. 연구원 소하일라는 비록 휴가가 끝난 후 특정 구역에서 이상 징조를 발견해 정찰을 나가는 길에 난류와 오징어 떼를 만나 위험에 빠진다. 그러나 위험에 빠진 장면의 아름다움은 역설적으로 정형화되지 않은 위협 즉, 자연이 주는 위협의 찬란함을 드러낸다.

찬란함은 구획화되고 절단된 크립토밸리로부터 오는 답답함으로부터 오는 위협과는 다른 자연의 위엄을 보여주며 크립토밸리의 난개발로 인해 발생한 기후 변화와 자원 고갈이라는 위기를 자연의 위엄이자 위협으로 해결하자고 말하는 듯하다.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자연 파괴 후 닥쳐올 종말이 수리솔 수중 연구소라는 다공화 가능성을 만들어 낸 것처럼.



두터운 현재를 향하여 _ A


구멍, 검은 구멍, 이동식 구멍, 무엇이든 생성될 수 있으며 동시에 무엇도 생성되지 않는, 순수한 만큼 깊은 어둠의 구멍은 현실의 부재와 존재를 동시에 지시한다. 다공성 계곡 출신 페트라 제네트릭스는 입도도, 출도도 허락되지 못한 부유하는 상태로 세상의 기원, 지구의 가슴, 우주의 눈, 어머니 바위, 즉 에인션트 클라우드Ancient Cloud가 있는 크립토밸리에 임시로 머물게 된다. 페트라의 이동은 구멍을 통해 자유로우나, 이주는 제국의 눈으로 경계 지어진 지도로 인해 쉽지 않다. <다공성 계곡2: 트릭스터 플롯>는 판지리학을 통해 국경이라는 경계가 생기기 이전의 지리적 감각으로 제국주의적 시공간을 파괴한다. 존재를 검증하고, 증명해야 하는 심사와 절차, 존재 자체로의 증명과 증명을 통해 고로 존재하게 된다는 아포리아로 구축된 근대 이후의 코스모폴리탄적 세계는 3D 모델링으로 구축된 가상 세계로 하여금 폭로된다. 가상의 세계는 장소를 삭제하는 동시에 무엇보다 데이터로 가득차 있다는 점에서 비물질적 기술중심주의 세계와 조응한다. 지하 광물이자 데이터 처리 단위인 페트라의 고체성은 투명한 물방울 형태의 <수리솔 수중 연구소에서>의 수리솔로 흐르며, 고체성에서 액체로, 액체의 역동성으로 연결된다. 지하 광물로 생산된 화석연료에서 다시마로 생산하는 바이오매스원료의 자연주의적인 채굴주의로의 흐름은 해류의 비정상적 운동인 난류에 휩쓸릴때, 바다 역시 기후위기의 영향으로부터 예외적이지 않은 지구 공간임을 상기시킨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근대』에서 우리가 액체를 고체에 비해 비교적 덜 가볍고 덜 무게가 나가는 것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으며, 근대 역사에서 새로운 단계인 오늘날의 속성을 ‘유동성’이나 ‘액체성’이라 말하며 적합한 은유라고 생각하지만, ‘견고한 것들을 녹이는’ 액화 과정에 대한 새로운 근대에 대한 처방은 “새롭고도 향상된 견고한 것들이 자리 잡도록 현장을 청소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기억해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아영 작품의 유동성을 통해 액체 역시 작은 분자들의 배열이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합리성의 고체적 역학 구조로부터 액체의 내재적인 움직임과 역동성을 목격하는 것은 오늘날의 두터운 현재를 향해 목격자들이 행해야 할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