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 배두나
이번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2021.8.26-9.1)에서는 배두나 특별전 「SWAGGIN' LIKE 두나」가 열린다.
해파리는 더이상 해파리의 프로젝트를 공란으로 남겨둘 수 없다고 생각했고, 영화제의 라인업을 기다리며 배두나 배우의 몇 작품을 함께 얘기해보기로 했다.
세 필진은 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일곱 작품 중 각자에게 배우 배두나를 각인시켰던 세 편의 영화 <코리아>, <괴물>, <복수는 나의 것>를 선택해 배우 배두나의 필모그라피를 따라가보았다.
코리아
As One, 2012
문현성
'코리아'라는 경계, '배두나'라는 틈
- 난둘
픽션 영화를 감상할 때면, 작품 속 인물들의 프레임 밖 삶이 궁금해지도록 만드는 작품을 선호한다. 쇼트 밖으로 뻗어 나가는 가상의 인물의 가상의 삶은 영화라는 (허구적) 현실과 접촉하며 그물화된다. 그 그물은 가상-현실-가상-현실의 교차로 엮여있다.
그리고 그 엮임이 너무 튼튼해 관객들에게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는 것보다는, 관객들에게 틈 사이로 빠져나갈 시간을 만들어 주어 관객 나름대로 그물망을 추가하도록 만드는 작품을 선호한다. 또한, 모든 작품의 등장인물이 프레임 밖 삶을 구체화할 힘을 가졌으면 한다. 영화의 인물이 작품의 제한된 프레임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좁은 우물만 열심히 돌아다니는 개구리 같은 삶을 살지 않았으면 한다.
<코리아>(문현성, 2012)에서 그런 힘을 가진 인물은 배두나가 연기한 북한 탁구선수 리분희 말고는 찾기 힘들다. 이는 아이러니하다. <코리아>는 남한 측의 시선으로 북한 측을 바라보는 작품이기 때문에 현정화와 남한 측 인물들을 중심으로 플롯을 구성한다. 대부분 북한 측 인물들은 남한 측 인물들에게 반응하는 쇼트에만 등장한다. 그런데도 리분희는 프레임 밖으로 자꾸만 빠져나간다. 왼손으로 치는 탁구처럼, 탁구대라는 프레임에 닿았다가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처럼.
<코리아>에서 남한 측 인물들은 대체로 과거가 없다. 작품은 남한 선수들에게 탁구에 열중하게 된 동기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는 오직 리분희에게만 있다. 리분희는 탁구에 전념하게 된 순간을 현정화에게 털어놓는다. 짧게 지나가는 이 고백은 현정화가 리분희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계기로 기능하도록 쓰인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리분희에게 (실제) 현실로 구축된 가상과 (허구적) 현실을 넘나들 기회를 부여한다.
리분희는 <코리아>의 시나리오를 통해 구성된 과거 그리고 현재가 존재하지만, (실제) 현실에 현존할 그의 미래는 북한이라는 가깝고도 먼 국가에 있기에 들을 수 없다. 그렇기에 리분희는 유일하게 영화가 만든 그물을 일탈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리분희를 연기한 배두나는 그 일탈을 가능하게 한다. 전형적인 등장인물 사이에서, 배두나는 어디에도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캐릭터의 유령성을 구현한다.
괴물
The Host, 2006
봉준호
거북이 달린다
- 서너시
루이비통 아티스틱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인상 깊게 보았다던 <괴물>의 배두나. 영화 내내 배두나는 등판에 '수원시청'이라고 적혀 있는 와인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다. 더러운 행색에 대사도 많지 않고, 폭발적인 감정 표현을 하는 캐릭터들 사이에서 비교적 차분해 보이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배두나는 존재감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배두나는 실종된 조카를 구하기 위해 괴물을 찾아 나서는 전국체전 양궁 동메달리스트 박남주를 연기한다. 박남주는 과녁판의 카메라 렌즈를 맞출 정도로 집중력이 뛰어나지만 활을 쏘는 속도가 느린 것이 단점인 선수다. 그녀는 전국체전 1,2위 전에서도 오버타임으로 패배할 뿐만 아니라, 원래부터 행동이 굼뜨고 느린 캐릭터라 가족들 사이에선 거북이로 불리기도 한다.
거북이라는 별명답게 박남주는 거북이 등껍질 같은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채 움직인다. 여기서 나는 배두나의 달리기 연기에 주목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매사에 느릿느릿하다는 설정의 캐릭터를 연기했다면서 달리는 모습에 주목하라는 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런 캐릭터인데도 달리는 장면이 많고, 또 배두나는 '거북이가 달리는' 연기를 훌륭하게 해낸다.
병원을 탈출하는 장면에서 나름 긴박하게 뛰는데도 묘하게 느려 혼자 승합차에 올라타지 못하고 남겨진다거나, 승합차를 세워주자 근처에서 달리기를 멈추고 속도를 줄여 걷기 시작한다거나, 괴물의 서식지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리지만 중간중간 힘이 빠져 균형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 등에서, <괴물>의 배두나는 뛰고 걷는 동작을 몹시 자연스러우면서도 특징적으로 연기한다.
그러나 가장 임팩트 있는 장면을 꼽으라면 아마도 박남주가 괴물의 눈에 불화살을 명중시키는 장면일 것이다. 이미 한 차례 괴물에게 화살을 쏘는데 실패했던 그녀는 마지막에 가서 결국 타이밍에 맞춰 화살을 쏘는데 성공한다. 영화 <괴물>에는 박남주가 양궁선수로서 자신의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성장 서사가 서브 플롯으로 들어있는 셈이다. 자신의 턴이 끝나자 그녀는 치솟는 불길을 뒤로 한 채 곧장 뒤돌아 나간다. 그리고 배두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친 양궁선수의 얼굴을 표현해낸다.
복수는 나의 것
Sympathy For Mr. Vengeance, 2002
박찬욱
복수는 배두나의 것
- A
망설임 없이 <복수는 나의 것>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배두나 배우가 맡은 차영미의 관점에서 영화를 보자니 조금 지나 후회가 밀려왔다. 이를테면, 류와 영미의 섹스씬에서, 각자의 시점쇼트로 분할된 상체, 류는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에 둘의 언어는 수화를 기반으로 하고, 방안을 채우는 영미의 신음소리와 류에게 수화를 통해 말 거는 영미의 몸짓/육체를 향한 시각적 사로잡힘. 이러한 것들. 어떻게 영미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함(그렇다면 이게 구원 비평?). 류와 한평생 살아온 류의 누나가 수화를 하지 않아 소통불가능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한 프레임 내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로부터의 비극을 만들어낼 때, 영미는 방안에 놓인 전신거울을 통해 수화로 류와 대화한다. 그러나 보여지는 여성으로서 영미의 육체와 동시에 영화를 보는 내내 맴도는 영미의 노래소리. “무찌르자 공산당” 영미가 고무줄놀이를 하며 부르던 이 노래를 유선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을 때, 이 영미의 노래, 음성, 목소리는 돌림노래처럼 사람들의 곁을 떠돌며 복수의 공기를 생성한다.
까뮈식 부조리로 가득찬 희비극과 폭력의 연쇄로 점철된 <복수는 나의 것>에서 영미는 과거 정성일이 지적한 대로 “죽음을 알리는 도미노이다.”1그는 삐뚤해보이지만 치열하고도 정교하게 놓인 복수의 도미노의 첫 패를 순진한 얼굴로 밀어버리고, 그 마지막 패 역시 무구한 얼굴로 거둬버린다.
“아저씨,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우리 조직, 테러 단체니까 아저씨 죽어. 100프로, 확실히. ...
죽고 싶지 않으면 나 두고 가요.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야. 정말이에요. 그리고 미안해요. 100프로, 확실히.”
동진이 복수를 위해 영미의 방으로 찾아갔을 때, 영미의 이 실없는 말은 영화의 엔딩에서 진실로 밝혀지고, 순수한 복수의 정념으로 가득찬 영화는 허무해진다. 가슴에 단도로 찍힌 판결문을 읽으려는 동진이 왜, 나한테 왜, 라고 계속해서 웅얼거릴 때 흘러나오는 영미의 앞선 대사의 반복되는 보이스오버는 한 번도 영미가 방문한 적 없던 강가를 떠다닌다.
카자 실버만Kaja silverman은 영화에서 여성의 목소리 개념을 이론화한 ⟪음향적 거울⟫(1988)에서 고전영화 속 여성의 목소리는 육체적 스펙터클로서 여성 신체와 밀착되는 반면, 남성의 목소리는 주로 탈육체화되며 권위를 갖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실버만은 서사에서 권위를 지니지 못하는 여성 주인공에게서 저자의 목소리를 발견하며 여성 주체성을 ‘고쳐쓰기’ 하는 것에 주목하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복수는 나의 것>에서 영미의 탈육체화된 보이스오버는 영미를 언명자로서 ‘고쳐쓰기’하며, 영미가 첫 등장씬에서 판결문을 ‘고쳐쓰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과 언어를 부여한다. 이 거울에 비쳐 보이는 여성으로서의 영미는 오히려 그 반영적 위치를 전복하여 복수의 세계를 소유하는 것이다.
1) 정성일의 <복수는 나의 것> 비판론 [2], 2002-04-25,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