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아나토미

Myanmar Anatomy, 2023




해부와 타자 _ 난둘

미얀마 양곤 동물원의 박제 전시실에는 영국 식민 지배 이후 죽음을 맞은 동물들이 있다. 그들은 ‘이국적인’ 나라에 서식하는 ‘이국적인’ 동물을(심지어는 원주민을) 식민지에 전시하고자 했던 식민자들의 타자화 논리에 표본화되었다. 동물원이 세워진 양곤은 영국 식민지 시대에 본격적으로 개발된 ‘근대식' 도시인데, 영화는 이러한 ‘타자화'와 ‘근대화' 그리고 버마인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가(nationalist)의 민족주의(nationalism)로 병렬되었던 당시의 미얀마를 해부학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즉, 영화는 미얀마 역사의 형태와 구조를 보고자 한다. 제1장, 박제된 동물의 해부도에서 장기들은 순환한다. 그러나 내부의 순환은 박제라는 외부 봉합으로 인해 안팎을 오가지 못한다. 영화는 1장의 부제를 ‘박제된 동물의 호흡에 관한 연구(a research on breathing taxidermied animals)’로 명함으로써 이러한 모순을 강화한다. 박제된 동물의 호흡은 내부에서만 순환하여 결국 장기들을 썩게 할 것이다. 그러나 장기는 방부 처리되어 썩지 못한다. 어쩌면 영화는 미얀마의 역사 형태가 모순의 형태임을 박제된 동물의 순환하는 해부도로 나타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2장에서 양곤의 순환 열차에 관해 얘기하는 것처럼.

영화는 미얀마의 역사를 설명하는 부분과 일본 난민이 된 인터뷰이의 말을 얽어 놓는 형식을 취하는데, 이는 인터뷰이의 신원을 특정하지 않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지만 ‘8888 항쟁’이나 ‘2021년 미얀마 쿠데타' 같은 특징적 구분을 없앰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동일한 시간대에 두고자 하는 배치로도 보인다. 또한, 영화는 비판의 대상을 상정하지 않는다. 물론 비판의 대상이 드러나기는 하나 명명되지 않는 일종의 개념(식민자, 군부독재자)으로 나타난다. 독립운동가가 쿠데타를 일으켜 군부 독재 시대를 이끌고, 민주주의민족동맹으로 민주주의를 맞이하였으나 소수 민족 탄압이 끊이지 않고, 다시금 군부 쿠데타로 내전 중인 미얀마의 역사에서 비판 대상을 특정하기란 어렵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병렬적인 지배가 지속되어 왔던 사회에서 특정 대상에 집중하지 않음으로써 병렬적인 구조로부터 소외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다만 영화에서 식민자의 동물 사냥으로 개체가 감소한 미얀마의 야생동물, 박제되어 버린 동물, 군부 독재와 민족 탄압으로 미얀마를 떠나온 난민, 프로파간다 박물관에 묘지를 빼앗긴 시체는 미얀마의 역사라는 형태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타자화한다. 이는 2장과 3장에서 미얀마 군부 독재로 인해 난민이 된 인터뷰이의 말이 이식된 서구 근대의 산물인 순환 열차와 근대적 공간인 박물관 사이에 삽입되면서 인터뷰이를 타자화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어쩌면 이는 군사 쿠데타에 반발하는 내전과 지속되는 소수민족 탄압이라는 역설이 뒤엉킨 미얀마에 관해 “not to say anything…”1)한 상태를 그저 인식하게 된 시점의 기록이라 그런 건 아닐까. 영화는 역사의 흐름에 타자화되어 놓여진 미얀마의 ‘야생동물’과 ‘박제동물’ 그리고 ‘난민’을 얽어 놓은/영화의 흐름에 삽입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인식의 다음 단계를 실천하고자 하는 단계를 자신도 모르게 밟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단계를 포착해 인식을 재구성해가는 것은 관객의 몫이 될 것이다.

1) “I also take care not to say anything negative about the military.”
인터뷰이의 인터뷰 인용.


애니메이트와 인애니메이트 _ A

이미지는 과거와 미래를 보게 한다고 생각해 왔다. 시간에 붙들린 이미지는 시간을 초월하는 시간성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어 왔다. 그리고 프라팟 지와랑산의 2023년 작품 <미얀마 아나토미>는 촬영 날짜가 기입된 사진의 정박되어 버린 시간으로부터 이미지를 보는 자, 자신이 현재를 향하게끔 한다. 말 그대로 몸체를 순환하는 혈관처럼, 도시의 외곽을 순환하는 낡은 열차처럼,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역사의 망령으로부터 현재를 회억하게끔 말이다.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 필름은 1988년 군사 쿠데타 후부터 2021년 군사 쿠데타 전까지 촬영된 사진, 인터뷰, 감독 프라팟의 간헐적인 서술로 배치된다. 1906년 영국이 설립한 양곤 동물의 사진과 검은 화면에서 음성으로만 들려오는 인터뷰는 1988년 8월 8일 시작되었던 버마의 민주화 항쟁인 ‘8888 항쟁’을 경유하여 흐르고, 식민지 시절 영국이 버마에 도입한 양곤 순환 철도가 지나는 길이 촬영된 사진은 2007년 불교의 승려가 주축이 되었던 반정부 민주화 시위 ‘샤프란 혁명’ 당시 체포되었던 인터뷰이의 목소리와 교차된다. 마지막 세 번째 장은 2001년 정부가 1938년 영국 통치에 반대하는 전국 파업에서 희생당한 랑군의 대학생들과 8888 항쟁의 희생자들이 매장되었던 공동묘지를 도시 외곽으로 이전시키고, 그 자리에 개장한 ‘마약 퇴치 박물관’을 다룬다. 필름은 이 같은 버마사를 ‘사건’으로서 구체적으로 지시하기보다는 버마의 ‘활동가’들이 ‘사건 이후’ 일본과 같은 국가로부터 ‘난민’으로서 자격을 취득해 ‘생’과 ‘삶’을 지속하는 인터뷰를 통해 배경으로서 서술되도록 한다. 이는 마치 <미얀마 아나토미>가 ‘미얀마’라는 국명을 제목으로 내세웠으나, 그 내부에서는 공식적인 기관명을 제외하고는 미얀마를 아웅 산 수 치를 위시하는 버마의 민주화 운동 진영이 고수하고 선호하는 ‘버마’라는 국명으로 호명하는 방식과 마찬가지이다.

실질적인 힘 앞에서 <미얀마 아나토미>는 정치도, 운동도, 투쟁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2021년 군사 쿠데타와 격화하는 민주화 내전으로부터 필름은 버마사를 현재에서 서술하고, 언급할 수 있게 하는 ‘그 무엇’을 자신의 동료와 버마인들의 안위를 위해 직접적으로 지시하지 않는 방법론을 통해 직시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이같은 방식은 현재의 버마를 넘어 전세계에서 자행되는 전쟁과 폭력을, 제국주의, 식민주의, 군부 정권, 세계 권력의 심연에 감춰진 고통의 역사를 체현하는 자연의 소리와 박제 동물의 해부학 이미지를 통해 비인간의 역사로 인간사를 기록하는 시도로 확장된다. 필름에서 인간 동물을 포함한 동물의 해부학 이미지는 세 개의 장을 가로질러 각 장마다 전경에 배치된다. 제국주의자들이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야생 동물을 사냥하고, 근대의 국가와 정권이 교육이라는 목표를 내세우며, 살아있는 생명을 사물로 박제해 온 역사와 힘에 지배당해 온 자연과 땅은 어떻게 주체로서 역사화 될 수 있을까?

프라팟 감독과 오랜 시간 작업을 이어 왔으며, <미얀마 아나토미>의 프로듀서이고, 인류세 연구를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의 무빙 이미지를 연구하는 영화 연구자인 그라이웃은 자신의 글 『Tracing the Anthropocene in Southeast Asian film and artists' moving image: introduction』1)을 통해 “무생물과 같은 비인간 존재에 영혼Soul을 부여하는 믿음 체계는 식민지의 편견을 제거하고 ‘더 나은 세상을 가져올 수 있는 관점에서 근대성을 반영하는 중요한 도구’의 하나로 새로운 “애니미즘”을 제안한다. 그가 주목하는 애니미즘은 “미신이나 야생으로서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존재론과 우주론, 인간이 우월하거나 중심이 아닌 세계의 존재 방식을 인정하는 방식”으로써 “지리적으로나, 상상적으로 '동남아시아'이지만 '공식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야생' 지역을 포함하는 동남아시아의 틀을 확장”하는 방식으로의 새로운 사유의 틀이다. 이러한 애니미즘의 일종으로서 <미얀마 아나토미>를 사고하는 일은 근대의 이름으로 서술되어 온 역사와 지배의 방식을 새롭게 상상하게 할 것이며, 영화 연구의 지형도 역시 새롭게 매핑할 것이다.

처음과 끝, 프라팟과 익명의 누군가는 편지를 주고 받는다. 프라팟이 보내는 편지의 수신자는, 필름의 수신자에게는 자신의 현재 위치를 밝힐 수는 없다. 허나, 프라팟의 문장을 빌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해도, 우리를 알지 못하더라도, “당신의 안전을 기원하며 나중에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From here

1) Chulphongsathorn, G., & Lovatt, P. (2022). Tracing the Anthropocene in Southeast Asian film and artists' moving image: introduction. Screen, 62(4), 533-540.